[Special II] ‘아홉시반 주(酒)립대학’ 캠페인
CHEIL WORLDWIDE 기사입력 2014.08.28 05:41 조회 29798


인터뷰이 이민규 프로 캠페인 11팀 편집실 사진 허동욱 포토그래퍼

개념 있는 소주가 되고 싶다
보해양조가 올해 새롭게 출시한 소주 브랜드 ‘아홉시반’은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알코올 도수를 17.5°(일반 소주는 19°)로 내린 제품이다. 도수가 낮아진다는 얘기는 그만큼 원료 사용이 줄어들어 이익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해양조는 도수를 내림으로써 발생하는 영업 이익을 기업이 회수하는 대신 소비자에게 돌려주고자 했고, 그 일환으로 용량을 15㎖ 더 늘렸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소주병을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별도로 병을 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해양조는 추가 설비 투자를 통해 아홉시반에 특화된 병을 별도로 만들었다. 이는 ‘사람들이 좋은 제품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클라이언트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보여준다. 아홉시반의 로고 또한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아홉시 반을 나타내는 시계 바늘을 형상화한 모습이지만, 그 속내에는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아홉시반은 개념 있는 소주를 만들고 싶었던 클라이언트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진짜 학교의 탄생
이 캠페인을 위해 모인 제일기획의 캠페인 11팀과 서용민 CD팀은 론칭 시점에서 두 가지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는 ‘아홉시반’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였고, 두 번째는 기존 유통망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였다. 첫 번째 고민에 대한 실마리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술자리에서 나왔다. 어느 날 서용민 CD는 후배와 술자리를 갖게 됐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토로하던 후배가 “도대체 학교에서는 왜 이런 문제를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거냐”고 항변했다. 후배의 말끝에 퍼뜩 떠오른 생각. 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정작 필요한 것들은 학교가 아니라 술자리에서 배우고 있구나! 삶의 진솔한 얘기가 오고가는 술자리야말로 진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생각을 발단으로 ‘개념 있는 음주 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아홉시반 주립대학’이 태어났다.

“대학의 모습을 갖추려면 총장도 있고, 교수도 있고, 학생들이 강의도 들어야겠죠? 그래서 방송인 김제동 씨를 총장으로 영입하고, 진중권 씨나 박기원 씨 같은 분들을 교수로 초빙했어요. 酒문학부, 연애학부, 예능학부처럼 학부 체계도 갖췄죠. 저희가 교수로 모신 분들은 유명세를 떠나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한 소신과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학교의 설립 취지에 부합되는 인물들을 동원해 사이버대학을 설립하게 된 거죠.”

이민규 프로의 말이다. 처음에는 ‘브랜드 사이트를 만들어 강의 콘텐츠를 올리면, 방문자들이 들어와 콘텐츠를 재미있게 경험하겠지’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도치 않은 현상이 일어났다. 하루 평균 방문자가 수십 만 명이 되고, 누적 방문자가 300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방문자들은 그저 댓글을 다는 수준을 넘어, 다른 방문자들과 함께 대화하며 이곳을 진짜 학교로 여기기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 소속감과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의,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교
브랜드 사이트의 경우, 오픈 후 접속자수가 증가하다가 일정 시점이 지나 정점을 찍으면 감소 추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나날이 방문자수가 늘며 커뮤니티가 더 강화되고 있다. 이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은 재미있고 다양한 강의 콘텐츠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다 보니,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홍보를 하고 그러한 입소문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학교를 찾게 됐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 바탕에는 우리 사회의 열망이 함의돼 있다.


1. 이벤트 용도로 제작된 모자와 키트. 학생들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사실 아홉시반 주립대학의 오픈 시점은 4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큰 사건이 일어나면서 개교가 한 달 이상 연기됐지요. 그런데 개교 후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 줄은 짐작도 못 했습니다. 큰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에 ‘개념’에 대한 갈증이 더 증폭됐고, 그것이 아홉시반 주립대학의 취지와도 통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개념을 표방하는 아홉시반 주립대학으로 속속 모여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정과 진솔함, 소소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귀를 기울였다.


2,3,4. 방송인 김제동이 총장을 맡고 있는 아홉시반 주립대학. 진중권, 박기원, 하재욱 등 각 분야에서 ‘개념맨’으로 통하는 교수들의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민규 프로는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두 가지 이슈를 새삼 느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인터랙션에 관한 것이다. 기존에 우리는 인터랙션 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먼저 떠올렸다. 예컨대 마우스를 클릭하면 웹이 반응하거나 디지털 기기를 터치했을 때 피드백이 오는 경험들 말이다. 하지만 이민규 프로는 인터랙션에 반드시 테크놀로지가 개입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와 클라이언트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진정한 인터랙션인 것 같습니다. 사람과 테크놀로지의 인터랙션은 단선적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인터랙션은 새로운 스토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죠.”

또 하나. 소비자가 참여하는 마케팅 영역은 마케터가 국한시킨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그렇지 않다. ‘학교’라는 테마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이는 교가를 만들어 배포하고, 어떤 이는 학생증을 만들어 선보이며, 또 어떤 이는 자발적으로 학교 앱을 제작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아홉시반 주립대학의 스토리가 다양하게 변주되며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5,6. 아홉시반 주립대학의 건립 이념에 동의하는 방문자들이 홈페이지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그날부터 이 학교의 ‘학생’이 될 수 있다.

Showing을 넘어 Doing하는 캠페인
학생들이 질문을 던지면 조교가 나와 답변하고, 학생들이 건의 사항을 제안하면 교무처 직원이 개선 사항에 대해 공지하는 학교. 이민규 프로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아홉시반 주립대학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고 한다. 이 학교의 운영은 클라이언트와 제일기획이 직접 맡고 있다. 각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나눠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형태다. 때로는 클라이언트가 직접 나서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한다. 클라이언트까지 발벗고 있다니 놀랍다.

“보해양조 클라이언트는 좀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함께 천천히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지, 기발한 마케팅에 힘입어 잠깐 인기몰이를 하고 사라지는 건 지양한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와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직접 캠페인에 뛰어들고 있는 셈이죠. 클라이언트로서 어려운 선택을 한 것도 그렇고, 직접 참여하는 자세에 감명 받았습니다.”

보통 주류 광고는 유명 연예인 모델을 등장시키거나 여자 아이돌 그룹을 내세워 눈에 확 띄는 캠페인을 벌이는 게 일반적이다. 기존 매체를 통해서는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마케팅 툴이 거의 없는 데다가 주류 광고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단시간 내 강한 임팩트를 주기 위한 자구책이다. 하지만 아홉시반은 기존에 통용되던 마케팅 툴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로 나섰다. 그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소비자와 인터랙션하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확산시키면서 엔딩 시점이 존재하지 않는 캠페인입니다. 단순히 브랜드 사이트를 론칭해 보여주기만 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광고회사가 소비자와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캠페인입니다. Showing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Doing한다는데 이 캠페인의 특징이 있습니다.”


7,8,9.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酒문학부, 연애학부, 예능학부, 교양학부 등 일반 대학처럼 학부 체계도 갖추고 있다.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이제 그 자체로 계속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가 됐다. 그렇다면 론칭 초기, 담당팀의 두 번째 고민이었던 유통의 벽은 어떨까? 넘었을까? 이 지점에서 아홉시반은 역설을 보여준다. 아홉시반 주립대학에서는 아홉시반 소주를 ‘교재’라 부르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나 오늘 특템했어요”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일부러 발품을 팔아 아홉시반 판매처를 찾아 나선 학생들이 술을 마시게 되는 상황, 그게 ‘특템’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희귀한 아이템을 얻게 돼 기뻐하는 것처럼 말이다. 넘기 어려운 유통의 벽이 존재했기에 역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고, 학생들의 애교심과 교재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소비자들은 제품이 있는 곳을 수소문해 자발적으로 찾아간다. 제품과 소비자의 커뮤니케이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아홉시반 주립대학 캠페인은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 해결책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홉시반 ·  주립대학교 ·   ·  술맛 ·  소주 ·  학생 ·  Showing ·  Doing ·  캠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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