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에 몸을 맡겨야 돈의 흐름이 보인다 ‘10억원 만들기’ ‘부자 아빠’로 대표되는 재테크 비책이 출판가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을 잠식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종잣돈 500만원으로 10억을 만들었다는 내 이웃의 부자들은 돈과 투자의 비밀만 알면 당신도 10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부자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속삭였고, IMF 외환 위기를 힘겹게 통과해온 이들은 이에 반색했다. 부자 아빠를 꿈꾸는 부모 밑에 자라다보니 아이들의 장래 희망도 ‘부자’가 부지기수인 현 세태. 아이든 어른이든 너나 할 것 없이 돈에 대한 욕망을 떳떳하게 표현하는 풍토 속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부자가 되었을까? 10억원을 벌면 행복할까?

이 같은 질문을 가슴에 품은 이가 있었다. 이른바 ‘돈 좀 만져본 남자’ 김동환. 영국 베어링어셋 매니지먼트를 거쳐 하나대투증권 이사, 리딩투자증권 전무, 리딩투자자문 대표를 역임하고 지금은 금융 전문 컨설팅 회사인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펀드매니저를 하던 1997년, 돌연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밍엄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공교롭게도 외환 위기 직전에 한국을 떠나,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은 자’로서의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귀국해 3~4년 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잠깐 멈춤’ 표지판을 내걸고 미국으로 떠났다. 원래 의도는 충전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으나, 타고난 일복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어패럴 사업을 하게 됐다. 뜻하지 않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다시 금융인로서 서울로 돌아온 때가 2008년. 공교롭게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인생의 변곡점이나 사회에 큰 변동이 있을 때, 잃지 않으면 그만큼 벌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이는 굳이 재테크란 표현을 쓸 필요도 없는 삶의 지혜, 금융의 기본이다.

“앞을 환히 내다보고 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살짝 감은 있었던 거 같아요. 두 번의 경험에서 깨달은 사실은 투자 성과를 내기 위해 내위주로 생각하는 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질없다는 거죠. 중요한 건 세상을 움직이는 큰 파도에 내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는 거예요.”


너도나도 부자 아빠를 권하는 세상 속에서 ‘작은 부자 행복론’을 설파하는 김동환 소장.

주식, 채권, 파생 상품, 해외 투자 등 투자의 모든 영역에서 최전선 공격수로 20여 년을 달려온 그는 이제 돈 버는 기술 대신 돈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투자도 결국 변화하는 세상과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 관계를 잘 맺은 사람은 성공하고, 그 관계가 왜곡된 사람은 실패한다.

먼저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고, 그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큰 부자는 모르는, 작은 부자로 사는 행복
운도 따랐다고는 하지만 돈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이 남다른 그가 최근 책을 냈다. 방송을 함께 하며 호흡을 맞춰온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와 의기투합해 쓴 <작은 부자로 사는 법>. 일단 돈을 이야기하니 재테크 책으로 분류해야 하지만 알고 보면 행복론이다. 여느 재테크 책과 달리 이렇게 저렇게 해서 돈을 벌었으니 그대로 따라 해보라 권하지 않는다. 대신 돈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과 재테크의 원칙을 세우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제시하는 데 공을 들였다.

돈 버는 재주도 없고, 종잣돈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말년까지 쪼들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포장마차에서 한잔하면서 툭 터놓고 대화하듯 짚어준다.

“부부가 다 초등학교 선생인 친구가 있어요. 15년 후면 은퇴를 할 텐데, 두 사람이 받을 연금을 합치면 월 600만원쯤 될 겁니다. 아이도 하나니, 이 정도면 노후가 보장됐다 할 만하죠. 그런데 이 친구가 10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주식 투자를 하더군요. 3억원쯤 투자하면 하루에 4500만원도 깨질 수 있는게 주식 시장이니, 아이들 얼굴이 눈에 들어올리가 있나…. 그렇다면 이 친구가 초등학교 선생으로서 품었던 꿈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는 ‘10억원이 목표’라는 기준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 인생 스케줄을 다 무시하고 획일적인 목표에 매달리는 게 문제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너도나도 10억원이니 나도 10억원이다?’ 이는 난센스라는 것.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맞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난 뒤 주식 투자든 부동산 투자든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테크 비책에서 강조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100세 시대, 노후 자금’이다. 그래서 노후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 자금 10억원을 만들라 부추긴다. 이에 대해 김동환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학생 시절을 마감하고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했듯, 이 사회를 나가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하라고. 은퇴 후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소득의 크레바스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이유인즉, 노후를 위해 축적한 자산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워진 금융 환경 때문이다. 지금은 돈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도, 은행에 어느 정도 돈을 넣어두고 그 이자로 먹고산다는 개념도 무너진 이 시점에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소득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자신의 탤런트를 활용하든 다른 역량을 개발하든 탐색과 노력과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자기만의 게임을 시작하라
“어떤 주식을 사면 좋을까요?”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김동환 소장은 우선 이 질문부터 정정하라고 이야기한다. 질문 자체가 아니라 순서가 틀렸다는 것이다. 자산을 운용하고 축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그 시기에 맞는 자산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산이라 함은 크게 부동산, 주식, 은행 예금을 비롯한 채권, 현금으로 나뉘는데, 이 자산의 배분과 어떤 비율로 조절할 것이냐가 선행 질문이다. 대치동에 아파트를 살까, 서초동에 아파트를 살까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 부동산을 구입하는 게 좋은지, 그냥 현금을 갖고 있는 게 좋은지 판단해야 한다.

“투자는 변화하는 세상과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 혹은 관계라고 봅니다. 그 관계를 잘 맺은 사람은 투자에 성공하고, 그 관계가 왜곡된 사람은 실패하는 거죠. 성공적인 투자는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호기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금융업계에서 쌓아 올린 20여 년의 시간과 개인의 역사를 바탕으로 김동환 소장은 세상의 흐름을 말한다.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나 자신이지만 한낱 개인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이 냉정한 현실 세계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종잣돈을 만들어 여유 자금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그가 설파하는 ‘작은 부자론’은 매우 현실적인 충고다. 자신의 인생에서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기반을 둔 지혜로운 금융 감각을 지닌 작은 부자. 고도성장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른바 ‘한 방’ ‘벼락부자’와 같은 말은 허황된 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게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경제 활동과 금융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남들이 만든 게임에서 땀 빼지 말고, 이제 자기만의 게임을 시작할 때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없듯, 삶의 결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것이 타인의 성공 신화를 따라 한다고 내가 큰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이룰 수 없는 부자의 꿈을 향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에 따른 지혜로운 투자로 자신의 소득을 올리는 것. 이것이 김동환 소장이 말하는 ‘작은 부자’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