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오히려 우리와 같이 부족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축복받은 사람이라며 발칙하게 통념을 뒤집는 기억에 관한 흥미로운 교양서《안녕하세요, 기억력》이 출간되었다. 날마다 ‘깜빡’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기억에 관한 에피소드와 새로운 지식을 위트 있게 엮어낸 이 책은 가히 기억과 망각에 관한 종합탐구서라 불릴만하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망각하는가에서 남녀의 기억력 차이, 알츠하이머 신드롬까지 기억에 관한 갖가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인기 칼럼니스트인 저자 마사 와인먼 리어의 탄탄한 취재력과 필력이 돋보이는 책 《안녕하세요, 기억력》은 2% 부족한 우리의 기억력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아! 그 좋던 기억력은 다 어디 갔을까?”
- 날마다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기억에 관한 잊지 못할 이야기
연말연시만 되면 연일 생기는 각종 모임과 친구들과의 약속에 스케줄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수많은 약속과 그 속에서 기억해야 할 갖가지 이름들……. 올해는 과연 실수 없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작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은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동차 키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손에 들고 있는 걸 발견하기도 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신문 기사의 내용도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내 머리, 어디가 고장난 걸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해야 할 일’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기억력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요인이 되었다.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의 부족한 기억력을 탓하며 의기소침해진다. 정말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안녕하세요, 기억력》은 이러한 통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저자는 슈퍼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이 평범한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이 오히려 축복 받은 사람이라 말한다. ‘기억’이라는 것을 제대로 안다면 자신의 2% 부족한 기억력과 함께 살아가는 현명하고 유쾌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방법들을 실행하기 전에, 이 책은 먼저 기억력과 좀더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 기억에 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하루만 지나도 희미해지는 치통치료의 고통과 생각할수록 쓰린 실연의 아픔은 어떻게 다른 걸까? 주소를 기억하는 남자와, 건물을 기억하는 여자의 차이는? 기억력이 좋아지는 음식과 운동은 따로 있는 걸까? 누구나 한번쯤 품어봄 직한 기억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알츠하이머 전문의, 뇌과학자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직접 밝히는 임상실험과 연구결과를 토대로 풀어본다.
섬광기억, 설단현상, 은재기억 등 그동안 몰랐던 기억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물론 생활 속 에피소드로 읽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이 책은 기억력이 우리 생활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불필요한 기억은 힘들지 않게 지워주고,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남겨두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억력의 힘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 물어보고 싶었지만 항상 ‘깜빡’ 했던 기억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
“나 영화 볼 건데 말이야. 왜 너도 알지? 긴 갈색 머리 여자가 나오는 그 영화.”
“무슨 영화인데?”
“알잖아. 그 녀석이 나오는 영화……. 그 영화 몰라?”
“가수하고 결혼한 녀석?”
“아니, 딴 녀석”
“아, 그 영화. 무슨 영화인지 알겠어. 그 키 작고 웃기는 녀석이 나오는 영화 말이구나.”
“맞아, 맞아!”
p17.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더라…〉
이름들, 이름들……. 과연 사람 이름 외우는 것만큼 우리를 애먹이는 것이 또 있을까? 왜 우리는 유독 이름을 잘 잊어버리는 것이고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찾아오는 것일까?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겪는 기억력에 관한 다양한 어려움을 끄집어내며 그에 대한 재치 있는 대답을 제시한다. 가령 이름 외우기의 문제라면 이런 거다. 단어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기호화 하는 것인데, 이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기억을 하는 데 있어 어떤 연관성이나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는 ‘공들임’의 방법으로 이름 외우기를 시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름을 내가 아는 어떤 이미지에 연결시켜 기억의 연관성을 높이는 것이다(1장).
기억에 관한 또 하나의 미스터리. 왜 열쇠는 잃어버려도 문을 여는 방법은 까먹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진화론에서 답을 찾는다. 바로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문을 여는 방법이라든지, 어떻게 걸어다녀야 하는지 등을 모르면 살아갈 수가 없다. 때문에 어제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와 같은 일화적 기억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것이다(16장).
이처럼 이 책이 더욱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은 날로 떨어져가는 기억력으로 스트레스 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생활에서 흔히 느끼는 기억력에 관한 궁금증에 해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현대인의 딜레마(2장),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3장) 등 재미있는 생활 속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기억력을 되돌아본다.
이 외에도 영화의 단골메뉴인 기억상실증의 비밀(8장), 국내에서도 자주 불거지는 표절시비가 사실은 은재기억이라는 기억의 한 종류 때문이라는 것(9장), 전 세계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알츠하이머 신드롬(11장) 등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기억력이 우리 삶 곳곳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 심리학에서 뇌과학까지, 각종 임상실험과 탄탄한 취재로 써내려간
기억에 관한 신개념 지식 교양서
이 책에 등장하는 갖가지 임상실험의 결과와, 각계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는 이 책이 단순한 에피소드 중심의 잡다한 상식사전이 아닌 단단하게 짜여진 교양서임을 보여준다. 전직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탁월한 취재력을 바탕으로 발달정신병리학, 로봇공학, 신경정신학, 생물인류학, 인지과학, 진화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취재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4장에서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신경정신과 의사인 사이번 배런-코헨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밝힌 성(性)과 기억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공개된다. 태어난 지 하루 된 신생아 100명을 대상으로 두 개의 영상을 보여준 결과 남자아이는 자동차를 더 오랫동안 보았고 여자 아이들은 얼굴에 더 흥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남녀가 반응하는 사물이 다르고, 기억을 함에 있어서도 그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다름을 뒷받침한다. 이는 부부싸움이 유독 차 안에서 많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해준다. 길을 찾을 때 남성은 표지판과 방향에 근거해 움직이고, 여성은 주위의 건물을 기억하며 찾아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기억으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운동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결과도 있다(5장).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아서 크레이머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6개월간 운동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A팀은 유산소 운동만을, B팀은 근육강화 운동만을 시켰다. 6개월 후 그들의 기억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놀랍게도 A팀이 15∼20% 정도 높은 빠른 인지적 수행능력을 보였다. 크레이머 박사는 그 분야에서 최초로 이른바 실행적 제어처리 능력의 증가를 측정해낸 것으로 유산소 운동이 기억력 향상은 물론 인지능력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 2% 부족한 자신의 기억력을 사랑하게 만드는 비결
당신은 9·11 뉴스를 들었을 때 어디에 있었는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는? 어떤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에 대한 기억. 이것을 섬광기억(flashbulb memories)이라 부른다. 왜 섬광기억은 이토록 생생하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부사항까지 하나하나 기억되는 것일까?
급박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뇌 부위 중 정서적 기능을 담당하는 아미그달라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여 기억을 더 강하게 새겨지도록 돕는다. 이와 비슷한 기억이 바로 유년기억이다(6장). 나이가 들어도 어릴 적 경험했던 일들은 사진처럼 세세한 것까지 모두 기억된다. 특히 그것이 바지에 오줌을 지린 창피한 경험이라든지,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은 자랑스러운 경험이라면 더 오래도록 지속되는데 이는 그러한 기억들이 감정적으로 더 큰 동요를 일으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기억되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인가? 뉴욕의과대학 부교수이며 뉴욕 기억력 치료센터에서 있는 가야트리 데비 박사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어떤 것들을 들여다보고, 고르고, 걸러서 기억할 것과 말 것을 결정하며 무의식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만약 필요 없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모두 기억한다면 유기체로 생존해 나가는 게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모스크바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알렉산드로 로마노비치 루리야가 20여 년간 연구한‘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S?에 관한 임상실험 이야기가 바로 우리에게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축복임을 일깨워준다(3장). 그는 책을 읽으려 하면 모든 단어들이 개별화된 시각적 이미지로 불려나와 그 이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즉 S는 단편적인 것들의 기억력은 뛰어나지만 그것들이 엮어졌을 때 의미를 읽어낼 수는 없는, 나무는 보지만 숲을 볼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S의 머리는 잡동사니로 가득 찬 머리였을 뿐이었다. 망각이 축복이라는 사실이 어색하긴 해도, 따지고 보면 내가 어제 먹은 점심을 기억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망각의 능력에 감사할 것. 그리고 정상적인 기억력 감퇴 속에서 메모하고, 외우고, 암송하며 적극적인 자세를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력에 대처하는 현대인들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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