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떠나게 되는 출장이더라도 그 일정과 거리에 따라 여행을 겸하기도 한다. 이처럼 각 지역을 다니면서 얻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나는 결혼 10년차다. 그간 많은 출장과 여행의 기회가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포함한 몇 안 되는 가족여행의 횟수를 꼽다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많다. 항상 다음에 같이 가자는 말로 넘기지만 그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고, 그 말들이 쌓여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든다.
와이프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시크릿가든’이후에는 더더욱 재미가 없단다. 이제 헤어날 때도 되었건만, 현빈에게 단단히 빠진 탓이다. 친구들과의 대화 역시 현빈이 주된 주제. 새로운 현빈 아이템이 나오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최우선이다. 현빈이 이번에는 어디에 나왔더라, 군대는 어디에 있고 뭘 한다더라, 급기야 삼성 스마트TV를 사야한다!? 게다가 말끝마다 ‘우리 빈이’를 외치는 그녀의 시야에서 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이런 현실이 비단 나만 느끼는 사정은 아닌 듯싶다).
그러던 어느 날, 현빈이 또 스쳐 지나간다. 새로운 자기를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는 K2 광고에서 뭐라 중얼거린다. 마치 같이 가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자기 소개를 하고‘어디로 떠나는 게 좋을까?’하고 속삭이듯 묻기도 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아주 작정하고 나를 자극한다. ‘다 나 혼자 챙겨야 하냐?’고 묻는 부분에선 아!~ 이 광고만큼은 와이프가 안보기를, 탄식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럴리가! 예상대로 얼마 뒤 TV를 함께 보던 중 K2 광고가 방영됐다.
와이프의 집중력이 전에 없이 높아진다. 내가 있든 없든 거의 TV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이다. 광고가 끝난 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빛으로 하는 말. 나도 여행 가고 싶다, 항상 당신 혼자만 갔으니 광고 카피처럼 나도 자기를 찾으러 떠나고 싶다… (같이 가자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 머릿속은 하얘진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이 생각났다. 광고가 나올 때마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가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의 부담을 함께 같이 떠나는 여행에 대한 계획을 짜는 일로 발전시켰다. 계획을 짜다 보니 그때 내가 다녔던 길들과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을 전하고 또 공유할 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혼자 여행 다니며 같이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고, 10년 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보여 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지금 나는 일로 떠나는 출장이 아닌 우리를 찾으러 떠나는 여행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광고 속 현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좀 더 현실적 대안(?)인 나와 함께 와이프가 떠나주길 바라면서.
PS : 항상 같이 갈 수 없어 무거웠던 내 마음을 이제 이해해 줄 수 있겠니? “현주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