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가 2008년 마케팅 키워드
2008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최대의 키워드는 ‘하이브리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가 융합되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장르들이 변화무쌍한 크로스오버를 거듭해 왔고, ATL과 BTL의 영역 다툼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밀려나 버렸다.
올해, 광고와 예술의 상호침투도 여러 형태로 일어났다. 광고가 시나 소설·영화·회화·음악·무용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차용하는 수도 있고, 반대로 팝아트나 키치 등의 대중예술이 작품 속에 광고를 인용하거나 일부러 광고물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 기법도 주목을 받았다.
올 한해, 지구촌 최대의 사건으로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꼽는 데 주저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대통령이 된 것은, 선거 구호로 표방된 ‘위대한 변화’를 넘어선 ‘놀라운 이변’이었다. 그러나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흑인이 아니었다. 이름에서도 연상되듯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가계의 피를 조금씩 물려받은 혼혈인(Hybrid)이었다.
미국에서 백인이 아닌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스스로 잡종 애완견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자조 어린 발언에서도 그 단면이 드러났다. 아무튼 ‘하이브리드’는 인종적으로 비주류에 속하는 다문화 가정에서 소년기를 보낸 한 미국 정치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담대한 희망을 묘사하는 데 따라붙는 다소 극적인 키워드로 언론 매체를 한동안 장식할 것이 틀림없다.
2008년 한 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최대의 키워드 역시 ‘하이브리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가 융합되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장르들이 변화무쌍한 크로스오버를 거듭해 왔다. 방송과 통신은 제도와 법의 틀 안에서 그 기능을 하나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장치를 확고히 보장받았다. 광고와 프로모션을 완강히 구분 짓는 선(Line)을 사이에 두고 우열을 주장해 오던 ATL과 BTL의 영역 다툼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밀려나 버렸다. 하나의 절대적인 선을 그어 그 ‘선 위에(Above The Line)’ 광고라는 가장 중요할 법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있고, 그 ‘선 밑에(Below The Line)’ 있는 광고 이외의 수단을 모두 BTL로 묶는 고정적 체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이슈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콘텐츠와 메시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러한 내용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 자체로 옮겨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정의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다. ‘크리에이티브를 고려한 미디어’, ‘미디어를 고려한 크리에이티브’의 이분법적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동적인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임을 갈파한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기존의 미디어는 새로운 미디어와 피를 섞으면서 또 다른 혼혈 미디어를 생성하고 있다. 그렇게 생겨난 뉴 미디어는 올드 미디어를 전방위적으로 재매개하는 형국을 하고 있다. 미디어의 지형도에 가히 백가제자의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춤과 노래가 요란하고 ‘이야기하기’ 욕망이 끓어넘치고 있다.
최근 들어 방송 미디어는 인터넷·휴대폰·게임·OOH(Out of Home)광고 등의 뉴 미디어와 BTL 수단들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광고 메시지 또는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미디어는 테크놀로지의 잉여와 과도한 제작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방송광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용자와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의 방법을 찾아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전통매체는 이제 생활공간 주위의 모든 것들이 곧 광고매체가 되고 있는 환경에 포위되어 있다. 게릴라 마케팅, 풀뿌리 마케팅(Grass Roots Marketing), 와일드 파이어(Wild Fire), 버즈 마케팅(Buzz Marketing) 등으로 불리는 실험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법들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뉴 미디어 영역에서는 기존 미디어의 통합(Integration)이나 융합(Convergence)을 넘어서는 ‘통섭(Consilience)’이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디어 통합은 ‘개별 미디어의 단순한 합침’을 의미하고, 융합은 ‘서로의 존재를 와해시키는 화학적 결합’을 뜻한다. 그러나 통섭은 ‘하나의 존재를 중심축으로 다른 존재를 끌어들이는 유기적 결합’이다. 즉 새로 나온 미디어가 이전에 존재하던 미디어의 단점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형태이다, 이러한 생산적 통합의 형태로 ‘재매개(Remediation)’를 들 수 있다. TV에서 어느 정도 노출횟수가 많은 광고를 브랜드 커뮤니티가 댓글을 달고 퍼 나르는 것은 미디어간의 재매개에 해당한다.
LG텔레콤이 시트콤 형식으로 내보낸 ‘오주상사 영업2팀’ 광고는 최근 한참 인기몰이 중이다. 이러한 인기를 배경으로 아이디어 공모전도 개최하였다. LG텔레콤에서 개최한 광고공모전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유해진, 박지성되다’ 편은 일본에 있는 박지성 팬이 일본으로 출장 간 유해진을 보고 박지성으로 오해해 사진을 찍어 올리고 국내 언론에 ‘박지성 일본 극비리 방문’이라는 기사가 실린다는 내용이었다.
SKT의 ‘생각대로 T’는 TV광고에서 ‘되고송’을 통한 광고 캠페인이 진행되고, 이와 더불어 온라인에서 오디언스들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UCC나 패러디를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이를 다시 TV 광고 캠페인에 직접적으로 내보내거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TV광고에서 이루어지는 광고는 BTL(인터넷·OOH·이벤트 프로모션)과 함께 집행되며 오디언스에게 직접적인 체험과 참여를 유도해 TV광고의 스토리텔링이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전개과정을 거쳤다.
2008년에는 문화 각 분야에 걸쳐 ‘스토리’를 들려주는 내러티브 양식을 일컫는 ‘스토리텔링’이 부각되었다. 광고나 방송 등의 문화 콘텐츠에서 스토리텔링이 부각된 것이 물론 올해 들어서 생겨난 새삼스런 트렌드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방송프로그램 중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KBS의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발전소>, 개그 콩트 ‘웅이 아버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불멸의 이순신> 등은 모두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토리는 구체적일수록 힘이 강했다. 광고와 신문방송의 기사, 인터넷 게시판에 실린 글들,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 등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생명으로 삼았다. 광화문의 촛불집회에서도 그러한 구체성은 행동을 유발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문화 콘텐츠의 중요 요소인 스토리텔링은 문화기술이나 장르에 의해 새로운 표현기법과 서사전략의 창조로도 연결되고 있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게임이든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얼마나 ‘이야기’를 잘 해낼 수 있는지가 하나의 보편적인 척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 즉 ‘이야기’를 잘하는 솜씨가 게임의 소재가 되고 방송의 소재가 된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이야기 발전소>이고 <서프라이즈>였다.
스토리가 새로운 무기로 주목받는 것은 광고나 마케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브랜드에 스토리를 넣어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판매촉진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스토리텔링+마케팅=감성 마케팅’, 즉 소비자의 ‘마음점유율(Mind Share)’을 높이는 수단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스토리가 담긴 제품은 품질이나 디자인이 뛰어난 상품보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 수 있고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제품 고유의 내재된 스토리를 통해 브랜드 차별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방송광고 중에서 패러디·차용·재가공 등의 형태로 인터넷 사이트와 방송 프로그램, 대학가의 각종 홍보물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이동통신 서비스 브랜드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캠페인과 KTF의 ‘Show’ 캠페인, LGT의 ‘오즈 영업팀’ 캠페인도 스토리텔링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들 세 브랜드는 이동통신 분야의 대표적 경쟁 브랜드로 마케팅과 광고에 있어 예산과 전략, 커뮤니케이션 효과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시장점유율과 마음점유율에 있어 선두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미디어의 활용 측면에서 스토리텔링의 전개과정을 보면, 세 캠페인 모두 멀티미디어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스토리텔링 전략을 이용해 흔히 캠페인 광고가 유발하는 지루함과 식상함을 줄이고 캠페인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것이 주목됐다. 특히 오디언스들에게 즐거움과 공감을 형성하고 있는 세 통신회사의 광고캠페인의 중심에는 인간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좋은 반응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생각대로 되고’ 송의 한 편이 자신의 처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 네티즌이 미니홈피에 광고 동영상을 스스로 스크랩하고 홍보하는 사례나, 대한민국 대학생 누구라도 한 번쯤 가봤을 MT를 실감나고 익살스럽게 표현한 KTF의 쇼 광고가 블로그나 카페 커뮤니티에서 화두로 이어지는 사례 등 이들 캠페인의 성공의 중심에는 ‘공감’과 ‘인간애’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세 통신사의 캠페인은 표현전략만 창의적으로 개발된다면 장기 캠페인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광고와 예술의 상호침투도 여러 형태로 일어났다. 광고가 시나 소설·영화·회화·음악·무용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차용하는 수도 있고, 반대로 팝아트나 키치 등의 대중예술이 작품 속에 광고를 인용하거나 광고표현의 일부를 빌어서 일부러 광고물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 기법도 주목을 받았다. LG는 마네의 <페레 라뛰의 정원>,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알프레드 빅터의 <해변> 등의 회화를 광고에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도약시키는 등 아트마케팅을 주도했다. 아트마케팅은 포화상태에 이른 크리에이티브의 한계에 돌파구를 열어주고 광고의 품위를 끌어올려 예술에 맞먹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론도 있지만 ‘예술 끼워팔기’라는 비판론도 외면해선 안 된다. 광고의 예술적 속성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광고를 위한 광고’의 미적 유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섣부른 동업이 초래할 공멸의 우를 피하고상생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첫째, 기업의 비즈니스 영역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유명 아티스트만을 선호하다 보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어색한 느낌만 남길 뿐이다.
둘째,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아트마케팅은 스타마케팅처럼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단발성의 행사로 그치기보다는 프로그램 단위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스폰서십이 효율적이다.
셋째, 제품을 살리되 속성에만 매달리지 말고 아티스트의 아우라(Aura)를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광고도 유명 예술가가 참여하면 주목할 만한 예술이 된다. 따라서 광고는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기보다는 아티스트와 브랜드 이미지를 결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넷째, 제품의 속성보다는 브랜드와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올림푸스 카메라의 ‘My digital story’ 광고캠페인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캠페인은 광고 수용자를 단순한 객체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한 데서 차별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콘텐츠의 재창조 또는 조작, 변경의 기능까지 수행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했던 것이다.
웹 2.0 서비스의 확대로 일반 이용자들이 제작한 UCC의 유통이 주로 블로그나 카페·미니홈피를 통해 활발해졌다. 그래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브랜드 커뮤니티의 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개인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적 수단으로 주목하는 이유는 지극히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 때문이다. 브랜드 커뮤니티는 유사한 관심사,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넷상의 모임이다. 이러한 온라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하기’ 욕망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올해 칸국제광고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소니의 브라비아 HDTV광고인 컬러볼(Color-Ball) 캠페인은 바이럴마케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샌프란시스코의 언덕 위에서 실제로 25만 개의 컬러 고무공을 떨어뜨리는 이벤트를 진행했고, 이를 고속으로 촬영해 배경음악과 함께 사이트에 올려놓았는데, 수백만 명이 온라인을 통해 광고를 보았고 65만 개 이상의 소비자 의견이 블로그 등에 게재되었다고 한다.
브랜드에 오락성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도 더욱 활성화되었다.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Branded Entertainment)’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극적인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기업의 강한 니즈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이 개발되고 웹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가 무한 재생산되었다. PC·모바일의 브로드밴드화로 동영상·사운드가 포함된 영상을 무제한 방영할 수 있게 된 방송통신 융합 환경은 소비자가 추구하는 재미거리를 충족시켜 주기에 좋은 자양분이었다. ‘디지털 스피릿’으로 무장한 사이버 유목민들은 일방적인 메시지의 수용을 거부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활용하고 재가공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UCC에 머물지 않고 SCC (Seller Created Contents), PCC(Professional Amateur Created Contents)의 생산자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이용하고 욕구를 충족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최대의 키워드는 ‘하이브리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가 융합되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장르들이 변화무쌍한 크로스오버를 거듭해 왔고, ATL과 BTL의 영역 다툼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밀려나 버렸다.
올해, 광고와 예술의 상호침투도 여러 형태로 일어났다. 광고가 시나 소설·영화·회화·음악·무용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차용하는 수도 있고, 반대로 팝아트나 키치 등의 대중예술이 작품 속에 광고를 인용하거나 일부러 광고물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 기법도 주목을 받았다.
올 한해, 지구촌 최대의 사건으로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꼽는 데 주저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대통령이 된 것은, 선거 구호로 표방된 ‘위대한 변화’를 넘어선 ‘놀라운 이변’이었다. 그러나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흑인이 아니었다. 이름에서도 연상되듯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가계의 피를 조금씩 물려받은 혼혈인(Hybrid)이었다.
미국에서 백인이 아닌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스스로 잡종 애완견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자조 어린 발언에서도 그 단면이 드러났다. 아무튼 ‘하이브리드’는 인종적으로 비주류에 속하는 다문화 가정에서 소년기를 보낸 한 미국 정치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담대한 희망을 묘사하는 데 따라붙는 다소 극적인 키워드로 언론 매체를 한동안 장식할 것이 틀림없다.
2008년 한 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최대의 키워드 역시 ‘하이브리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가 융합되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장르들이 변화무쌍한 크로스오버를 거듭해 왔다. 방송과 통신은 제도와 법의 틀 안에서 그 기능을 하나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장치를 확고히 보장받았다. 광고와 프로모션을 완강히 구분 짓는 선(Line)을 사이에 두고 우열을 주장해 오던 ATL과 BTL의 영역 다툼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밀려나 버렸다. 하나의 절대적인 선을 그어 그 ‘선 위에(Above The Line)’ 광고라는 가장 중요할 법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있고, 그 ‘선 밑에(Below The Line)’ 있는 광고 이외의 수단을 모두 BTL로 묶는 고정적 체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이슈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콘텐츠와 메시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러한 내용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 자체로 옮겨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정의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다. ‘크리에이티브를 고려한 미디어’, ‘미디어를 고려한 크리에이티브’의 이분법적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동적인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임을 갈파한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의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기존의 미디어는 새로운 미디어와 피를 섞으면서 또 다른 혼혈 미디어를 생성하고 있다. 그렇게 생겨난 뉴 미디어는 올드 미디어를 전방위적으로 재매개하는 형국을 하고 있다. 미디어의 지형도에 가히 백가제자의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춤과 노래가 요란하고 ‘이야기하기’ 욕망이 끓어넘치고 있다.
최근 들어 방송 미디어는 인터넷·휴대폰·게임·OOH(Out of Home)광고 등의 뉴 미디어와 BTL 수단들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광고 메시지 또는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미디어는 테크놀로지의 잉여와 과도한 제작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방송광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용자와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의 방법을 찾아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전통매체는 이제 생활공간 주위의 모든 것들이 곧 광고매체가 되고 있는 환경에 포위되어 있다. 게릴라 마케팅, 풀뿌리 마케팅(Grass Roots Marketing), 와일드 파이어(Wild Fire), 버즈 마케팅(Buzz Marketing) 등으로 불리는 실험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법들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뉴 미디어 영역에서는 기존 미디어의 통합(Integration)이나 융합(Convergence)을 넘어서는 ‘통섭(Consilience)’이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디어 통합은 ‘개별 미디어의 단순한 합침’을 의미하고, 융합은 ‘서로의 존재를 와해시키는 화학적 결합’을 뜻한다. 그러나 통섭은 ‘하나의 존재를 중심축으로 다른 존재를 끌어들이는 유기적 결합’이다. 즉 새로 나온 미디어가 이전에 존재하던 미디어의 단점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형태이다, 이러한 생산적 통합의 형태로 ‘재매개(Remediation)’를 들 수 있다. TV에서 어느 정도 노출횟수가 많은 광고를 브랜드 커뮤니티가 댓글을 달고 퍼 나르는 것은 미디어간의 재매개에 해당한다.
LG텔레콤이 시트콤 형식으로 내보낸 ‘오주상사 영업2팀’ 광고는 최근 한참 인기몰이 중이다. 이러한 인기를 배경으로 아이디어 공모전도 개최하였다. LG텔레콤에서 개최한 광고공모전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유해진, 박지성되다’ 편은 일본에 있는 박지성 팬이 일본으로 출장 간 유해진을 보고 박지성으로 오해해 사진을 찍어 올리고 국내 언론에 ‘박지성 일본 극비리 방문’이라는 기사가 실린다는 내용이었다.
SKT의 ‘생각대로 T’는 TV광고에서 ‘되고송’을 통한 광고 캠페인이 진행되고, 이와 더불어 온라인에서 오디언스들의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UCC나 패러디를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이를 다시 TV 광고 캠페인에 직접적으로 내보내거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TV광고에서 이루어지는 광고는 BTL(인터넷·OOH·이벤트 프로모션)과 함께 집행되며 오디언스에게 직접적인 체험과 참여를 유도해 TV광고의 스토리텔링이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전개과정을 거쳤다.
2008년에는 문화 각 분야에 걸쳐 ‘스토리’를 들려주는 내러티브 양식을 일컫는 ‘스토리텔링’이 부각되었다. 광고나 방송 등의 문화 콘텐츠에서 스토리텔링이 부각된 것이 물론 올해 들어서 생겨난 새삼스런 트렌드는 아니다. 최근 몇 년간 방송프로그램 중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KBS의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발전소>, 개그 콩트 ‘웅이 아버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불멸의 이순신> 등은 모두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토리는 구체적일수록 힘이 강했다. 광고와 신문방송의 기사, 인터넷 게시판에 실린 글들, 슬로건과 캐치프레이즈 등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생명으로 삼았다. 광화문의 촛불집회에서도 그러한 구체성은 행동을 유발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문화 콘텐츠의 중요 요소인 스토리텔링은 문화기술이나 장르에 의해 새로운 표현기법과 서사전략의 창조로도 연결되고 있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게임이든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얼마나 ‘이야기’를 잘 해낼 수 있는지가 하나의 보편적인 척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 즉 ‘이야기’를 잘하는 솜씨가 게임의 소재가 되고 방송의 소재가 된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이야기 발전소>이고 <서프라이즈>였다.
스토리가 새로운 무기로 주목받는 것은 광고나 마케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브랜드에 스토리를 넣어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판매촉진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스토리텔링+마케팅=감성 마케팅’, 즉 소비자의 ‘마음점유율(Mind Share)’을 높이는 수단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스토리가 담긴 제품은 품질이나 디자인이 뛰어난 상품보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 수 있고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제품 고유의 내재된 스토리를 통해 브랜드 차별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방송광고 중에서 패러디·차용·재가공 등의 형태로 인터넷 사이트와 방송 프로그램, 대학가의 각종 홍보물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이동통신 서비스 브랜드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캠페인과 KTF의 ‘Show’ 캠페인, LGT의 ‘오즈 영업팀’ 캠페인도 스토리텔링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들 세 브랜드는 이동통신 분야의 대표적 경쟁 브랜드로 마케팅과 광고에 있어 예산과 전략, 커뮤니케이션 효과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시장점유율과 마음점유율에 있어 선두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미디어의 활용 측면에서 스토리텔링의 전개과정을 보면, 세 캠페인 모두 멀티미디어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스토리텔링 전략을 이용해 흔히 캠페인 광고가 유발하는 지루함과 식상함을 줄이고 캠페인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것이 주목됐다. 특히 오디언스들에게 즐거움과 공감을 형성하고 있는 세 통신회사의 광고캠페인의 중심에는 인간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좋은 반응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생각대로 되고’ 송의 한 편이 자신의 처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 네티즌이 미니홈피에 광고 동영상을 스스로 스크랩하고 홍보하는 사례나, 대한민국 대학생 누구라도 한 번쯤 가봤을 MT를 실감나고 익살스럽게 표현한 KTF의 쇼 광고가 블로그나 카페 커뮤니티에서 화두로 이어지는 사례 등 이들 캠페인의 성공의 중심에는 ‘공감’과 ‘인간애’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세 통신사의 캠페인은 표현전략만 창의적으로 개발된다면 장기 캠페인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광고와 예술의 상호침투도 여러 형태로 일어났다. 광고가 시나 소설·영화·회화·음악·무용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차용하는 수도 있고, 반대로 팝아트나 키치 등의 대중예술이 작품 속에 광고를 인용하거나 광고표현의 일부를 빌어서 일부러 광고물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 기법도 주목을 받았다. LG는 마네의 <페레 라뛰의 정원>,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알프레드 빅터의 <해변> 등의 회화를 광고에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도약시키는 등 아트마케팅을 주도했다. 아트마케팅은 포화상태에 이른 크리에이티브의 한계에 돌파구를 열어주고 광고의 품위를 끌어올려 예술에 맞먹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론도 있지만 ‘예술 끼워팔기’라는 비판론도 외면해선 안 된다. 광고의 예술적 속성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광고를 위한 광고’의 미적 유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섣부른 동업이 초래할 공멸의 우를 피하고상생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첫째, 기업의 비즈니스 영역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유명 아티스트만을 선호하다 보면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어색한 느낌만 남길 뿐이다.
둘째,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아트마케팅은 스타마케팅처럼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단발성의 행사로 그치기보다는 프로그램 단위의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스폰서십이 효율적이다.
셋째, 제품을 살리되 속성에만 매달리지 말고 아티스트의 아우라(Aura)를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광고도 유명 예술가가 참여하면 주목할 만한 예술이 된다. 따라서 광고는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기보다는 아티스트와 브랜드 이미지를 결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넷째, 제품의 속성보다는 브랜드와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올림푸스 카메라의 ‘My digital story’ 광고캠페인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캠페인은 광고 수용자를 단순한 객체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한 데서 차별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콘텐츠의 재창조 또는 조작, 변경의 기능까지 수행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했던 것이다.
웹 2.0 서비스의 확대로 일반 이용자들이 제작한 UCC의 유통이 주로 블로그나 카페·미니홈피를 통해 활발해졌다. 그래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브랜드 커뮤니티의 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개인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적 수단으로 주목하는 이유는 지극히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 때문이다. 브랜드 커뮤니티는 유사한 관심사,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넷상의 모임이다. 이러한 온라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하기’ 욕망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올해 칸국제광고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소니의 브라비아 HDTV광고인 컬러볼(Color-Ball) 캠페인은 바이럴마케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샌프란시스코의 언덕 위에서 실제로 25만 개의 컬러 고무공을 떨어뜨리는 이벤트를 진행했고, 이를 고속으로 촬영해 배경음악과 함께 사이트에 올려놓았는데, 수백만 명이 온라인을 통해 광고를 보았고 65만 개 이상의 소비자 의견이 블로그 등에 게재되었다고 한다.
브랜드에 오락성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도 더욱 활성화되었다.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Branded Entertainment)’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극적인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기업의 강한 니즈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이 개발되고 웹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가 무한 재생산되었다. PC·모바일의 브로드밴드화로 동영상·사운드가 포함된 영상을 무제한 방영할 수 있게 된 방송통신 융합 환경은 소비자가 추구하는 재미거리를 충족시켜 주기에 좋은 자양분이었다. ‘디지털 스피릿’으로 무장한 사이버 유목민들은 일방적인 메시지의 수용을 거부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활용하고 재가공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UCC에 머물지 않고 SCC (Seller Created Contents), PCC(Professional Amateur Created Contents)의 생산자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이용하고 욕구를 충족하기에 이르렀다.
이현우 |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2nu@deu.ac.kr BBDO코리아, 한컴, 대홍기획, 제일기획 등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연세대 광고홍보학 석사, 한양대 광고학 박사. <광고, 묘약인가 마약인가?> <광고발상과 전략의 텍스트(공저)> <방송광고 장르론(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각종 대중문화 미디어에 광고 칼럼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