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CASE] Creativity & Hysteria 나는 강박마저 사랑한다
크리에이터의 머릿속은 어떨까. 창작에 대한 압박으로 남다른 강박에 시달리진 않을까? 이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매일 두 시마다 배꼽을 훔치고, 어떻게 카피 한 줄로 15초 만에 머리를 지배하고, 어떻게 단순하면서 강력한 비주얼로 꿈을 꾸게 하고, 어떻게 고기맛 나는 문장으로 타인을 치밀하게 감동시키는 걸까. 똑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보는 그들, 같은 말을 들어도 다르게 풀어내는 그들의 내면을 면밀히 해부했다. 이것은 일종의 질투이자 참견이고, 시샘이자 동경이다.
나는 그저 이야기꾼일 뿐
이재익 PD
7년 동안 청취율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라디오방송 <두시탈출 컬투쇼>의 PD. 낮에는 친절한 PD이자 밤에는 성실한 소설가로 변신하며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까지 쓰는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1997년 <질주질주질주>로 등단하여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아이린>, <41> 등 16편의 소설과 영화 <질주>, <목포는 항구다>, <원더풀 라디오>의 시나리오를 썼다. 얼마 전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란 책을 통해 본인의 모든 것을 고백하기도 한 그는, 서울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진정한 도시남자이기도 하다.
1.눈썹문신
포털사이트 관리자가 가장 원망스러운 순간. 내가 책을 몇 권을 내고 방송을 몇 개를 했는데 연관검색어가 ‘눈썹문신’이라니! 그래도 후회는 없다. 생각보다 엄청 자연스러운 데다 인상도 훨씬 또렷해져서 앞으로도 꾸준히 리터칭할 예정. 그래도 검색어에 첫번째는 말고 한 네 번째나 다섯 번째쯤 떴으면 좋겠네.
2.울진
사실 나는 알몸으로 왕피천에서 멱 감던 순진한 어촌 소년이었다. 처음부터 ‘강남스타일’은 아니었단 거지. 울진은 산과 바다, 강밖에 없어서 ‘보는’ 것 외엔 딱히 할 게 없었다. 1년에 몇 번 오는 ‘보따리 장수’에게서 산 세계문학전집이 유일한 놀이거리. 그렇게 동화를 읽으면서 반짝반짝한 세계를 꿈꾸고, 꾸고, 또 꿨다.
3.텔레비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못 봤다(안 나와서). 그런 내가 지금 방송국 PD라니!
4.강남
여름방학 때 잠깐 서울 외삼촌 댁에 머물던 꿈의 장소.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과 남산타워는 그야말로 센세이션! 13살 때 울진에서 곧바로 청담으로 이사하면서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남들은 좀 거쳐서 간다는데, 우리 집은 어쩜 그렇게 돌직구로 갔을까. 지금도 좋다. 강남이 좋고, 서울이 좋고, ‘도시’가 좋다. 나 혹시 차가운 도시남자?
5.이야기
내가 옛날부터 계속 미쳐 있는 것. 앞으로도 줄곧.
6.아놀드 파라솔
르까‘트’ 신어봤어? 엘레‘쏘’는? 비슷하게 생겼는데 항상 둘 중 싼 걸 사오셨던 우리 노친네. 심지어 난 아놀드 ‘파라솔’도 입어봤다. 오, 나의 질풍노도 시절이여. 덕분에 예쁜 서울 여학생과의 펜팔은 물 건너갔다네.
7.탈출본능
돌고래가 바다를 향해 여행을 떠나고, 아기다람쥐가 산 너머 모험을 떠나고…. 어릴 때 쓴 동화를 보면 강박적일 만큼 ‘탈출’이 등장한다.
내가 봐도 조금 무서운데, 이거. 그러나 이런 탈출본능이 지금 내 창작의 원동력이 아닐까. 아마 내가 처음부터 도시에 태어났더라면, 강남으로 이사 가서 왕따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이야기에 천착하진 않았을 것 같다.
8.카피라이터
1년 남짓 일했지만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자세는 광고회사에서 다 배웠다. 광고인은 10가지가 있으면 100가지처럼 말하는 사람. 지금도 아이데이션 작업에 이때의 지식을 많이 활용한다.
9.페이지터너
나는 소설가가 아닌 ‘이야기꾼’이다. 명백히 내러티브 중심이다. ‘낯설게하기’가 조금밖에 없고 문장이 쉬워서 페이지가 슥슥 넘어간다. 평론가와 팬들이 입을 모아 하나같이 하는 말. 깊이는 없지만 너무 재미있어요!
10.소설,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
소설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와 같다. 이 여자가 나에게 뭘 해도 좋은 거지. 방송위원회에서 한소리 듣고 나오면 온갖 생각이 다 들지만, 소설은 나를 괴롭히고 때론 배신해도 끝까지 손을 놓고 싶지 않다. 낮에 몸담았던 치열한 방송 현장과는 다른 것이니까. 미지의 공간으로 여행하는 느낌? 다만 시작이 PD였다면, 지금처럼 양립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다.
11.마크 리부의 소녀
마크 리부의 사진 전시회에서 한 소녀를 발견했을 때, 지금 쓰는 소설의 가제를 ‘오페라소녀’로 정했다. 소녀로 할지 소년으로 할지, 선생님이 소프라노여야 할지 테너여야 할지 무척 고민되는 순간에 나를 손뼉 치게 한 그 소녀. 소설 속 소녀가 딱 너처럼 생겼으면 좋을 것 같더라.
12.분노의 양치질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이를 닦는다. 상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을 때, 소설이 목구멍에서 뭔가 꽉 막힌 것처럼 잘 안 풀릴 때 어김없이 칫솔에 허연 치약을 짠다. 작업실에 다른 건 없어도 칫솔과 치약만은 꼭 구비할 정도. 가글을 하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쾌한 기분이랄까. 성직자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건 참 어렵지 않나. 잇몸이 닳아서 의사에서 정중한 경고를 받긴 했지만, 조금
우스꽝스럽거나 비과학적이라도 자기 마음을 눌러주는 습관이 있는 건 좋다고 본다.
톤앤매너, 아직도 몰라?
양승규 CD
여름이 빨리 지나가서 기쁜, 가을을 사랑하는 INNOCEAN Worldwid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SK텔레콤 T, SK브로드밴드, 멜론 등의 광고를 담당했으며, 현재 현대자동차와 KT 광고를 맡고 있다. 카피라이터 출신이지만 디자인적인 면모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 최근 먹어도 배고픈 사람을 위한 심리보고서 <식욕버리기 연습> 읽기에 푹 빠져 있다. 오늘도 한 줄의 카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팀원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몸을 뒤틀어가며 정신없이 달린다.
1. 10분
10시간 고민하고 10분 만에 써라. 선배한테 늘 듣던 말이다. 이미 어떻게 쓸지 마음속에 다 정해놓고 첫 문장부터 끝까지 한 번에 써내는 카피가 완성도가 높더라. 흐름도 좋고.
2. 새 날아가는 소리
예전 멜론 광고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었다. 우리끼리 ‘새 날아가는 소리’라고 부르는데, 특별히 전달하는 의미 없이, 오로지 감정의 상태만 카피로 보여주는 광고다.
중학생 남녀 둘이 이어폰을 나눠 듣는 장면을 정적으로 보여주며 ‘볼륨을 높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 너에게 들릴까봐’라는 카피를 붙이는 식이다. 이런 광고가 보기엔 쉬워 보여도 사실 더 어렵다는 거! 카피라이터 다섯이서 머리를 싸맨 과정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3. 말랑말랑
스프링보드. 딱딱한 면을 만들어놓고 위에서 널뛰기를 한다. 띵띵 뛰다가 탁 점프할 수 있는. 깊이 들어가야 더 높은 점프가 가능하듯이, 크리에이티브 작업도 논리적인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충분히 고민한 다음엔 하루 정도 딴 생각을 한다.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할 땐 ‘말랑말랑한’ 머리가 필요하다.
4. 애니팡
이 단순한 게임에 농락되는 나를 좀 보라지. 요즘 말랑말랑한 머리를 만들기 위해 애니팡의 힘을 곧잘 빌린다. 두 시간 정도는 우습게 지나간다.
5. 레고시계
아는 사람만 아는, 레고에서 나온 성인용 시계. 리미티드로 반짝 판매하기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탐내거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아 뿌듯한 내 아가들.
6. It’s now or never
나의 중간기, 발전기에 정말 큰 영향을 끼친 카피. 벤츠의 광고 카피로 ‘지금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벤츠의 문제는 나이 든
사람만 탄다는 이미지였는데, 벤츠가 할아버지가 타는 차라면 차라리 할아버지가 되라는 식이었지.
7. 톤앤매너
요즘은 광고를 만들 때 톤앤매너를 먼저 생각한다. 사실 톤앤매너가 아이디어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간과하질 않나. 그런 변화를 지금 현대자동차에서 보고 있다. 쏘나타 더 브릴리언트 광고가 BGM을 싹 없애고 효과음로만 꾸민다든가, 최근 론칭한 PYL 브랜드의 유니크한 이미지라든가. 콘셉트가 나왔을 때부터 톤앤매너를 생각하면 그런 그림이 나오는 것 같다.
8. 402번 버스
회사를 나가는 순간 일의 스위치가 딱 꺼지는 고수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머리를 계속 굴려야 뭔가 나오는 단계라서. 물론 술 먹다 필름이 끊기는 건 예외지만! 그래도 가끔 일부러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는 있다. 402번 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지나 남산 순환도로, 소월길을 돌아 남대문으로 내려온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무한정 멍을 때리면 뭔가 해소되는 기분.
9. 에버노트
메모 참 많이 했다. 지독히도 했다. 전엔 뭘 들고 다녀야 해서 좀 번거로웠는데, 에버노트란 앱을 사용하면서 많이 편해졌다. 편한 만큼 메모광이 더 심해지긴 했지만.
참, 자다가 일어나서 쓴 메모는 쓸모없는 경우가 많더라.
10. 지속성에 대한 갈망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가. 크리에이터라면 자기 자식이 오래도록 사랑받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광고는 온에어가 끝나면 정말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광고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옛날 광고를 찾아서 볼까.
11. 김애란
김애란을 참 좋아한다. 다 읽지 못하고 자꾸만 사는 책 가운데서도 그녀의 소설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게 된다. 그런데 당신, 요즘 너무 우울하게 변한 것 같아. 예전의 그 발랄함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12. 머리를 잘라볼까
세 번 들어갔는데 안 팔린다. 그럼 머리를 잘라볼까? 아님 손톱을 깎아볼까? 몸에 있는 걸 덜어내야 하는 징크스가 있다.
13. 위트
색깔이 있다는 것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겠지만, 지금의 난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잘 해내고 싶다. 위트, 지금 나에겐 위트가 부족하다.
공간과 퀄리티, 그리고 유머
오유경 국장
훤칠한 키에 날렵한 몸, 만화주인공 같은 웨이브 헤어의 오유경 국장. 그녀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직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어쩐지 조선시대 선비를 보는 것 같다. 꽃을 기르고, 동물을 사랑하는 아트 디렉터이자, 올해 4월 오픈한 Studio G의 수장인 그녀는 이곳이 INNOCEAN Worldwide 아트 디렉터들의 쉼터이자 피난처가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 일에 지친 후배가 ‘국장님, 시원한 술 한잔 사주세요’ 하는 애교를 발휘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1. 지난여름
아, 죽을 맛이었지. 17개 제작팀에서 한꺼번에 일이 몰아치는데, 일주일 동안 집에도 못 가고 회사에서 숙식을 했으니. 12시에 에어컨까지 끊겨서 정말, 짜증 ‘지대로’ 났다. 그런데도 팀원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은 ‘잠’ 아니면 ‘술’뿐이니….
2. 17년 차
96년부터 이 바닥에서만 17년. 참 돈 버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치?
3. 왕도
창의력은 어떤 왕도가 없다. 그저 시간이다. 집에 가면서 잠잘 때도 계속 생각한다. 친구에게 전화하고 엄마한테 전화하면서 물어본다. 진짜 그들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계속 집중하는 것. 들인 시간 대비 결과물이 대체적으로 좋으니까
4. 멘붕의 근원
일과 사생활의 균형이 삐거덕거릴 때 멘붕이 온다. 사실 둘을 분리하는 게 더 힘들다. 내가 했던 일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니까. 이 일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몰입이 중요하다. 그래도 아이를 갖고 나서부터 조금씩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5. 넌 내게 바라지 않지
꽃이 참 좋다. 예쁜 꽃망울을 언제 틔울지 이망저망 기다리는 재미, 이파리를 하나하나 닦아주며 마음을 가다듬는 재미. 넌 나에게 뭘 달라고 조르지 않잖니.
6. 유리 목걸이
잘 하고 다니지 않는 목걸이가 잔뜩 있다. 주로 ‘월정’의 목걸이들. 나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데, 안 살 순 없잖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유리알이 영롱한 목걸이를 보노라면 뭔가 자신감이 샘솟는다.
7. 만화
오랜 시간 동안 아트나 디자인을 하다보니,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옮기는 것이 힘들더라. 옛날부터 만화를 되게 좋아해서, 상황에 대한 스토리를 많이 그림으로 그렸다. 아, 이렇게 하면 설명적인데, 어떻게 하면 단순화할 수 있을까.
8. 맥주 10,000cc
다른 여자들처럼 빽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이상하게 목이 콱 막혀서 잘 안 된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술을 마신다.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으로 콸콸콸.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서 눈을 뜨면, 쓰려오는 속을 부여잡고 다시금 추스르는 것이다. 오죽하면 너도 마셨겠니, 하면서
9. 강풀
당신 그림 참 못 그린다. 그치만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생각하고, 얼마나 정직한지가 그림 속에 절절히 스며 있더라.
10. 유경’s 서울놀이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을 펼쳐서 아무 곳이나 손가락으로 탁 찍는다. 물론 실제로 찾아가보면 책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확실히 리프레시가 된다. 특히 현대미술, 그중에도 젊은 작가의 설치미술이 꽤 만족스럽다.
11. 욕 노트
남몰래 욕을 쓰는 노트가 있다. 최대한 더티하게, 라이브하게 적는다. 작은 노트에 끼적일수록 스릴만점. 흐흐. 근데 스튜디오로 이사 오면서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휴대폰에 몰래 적고 있었는데, 그 휴대폰마저 잃어버렸다는 거. 아, 그 휴대폰, 잠금장치도 안 되어 있는데….
12. GG
아유, 귀여운 내 새끼. 산에서 비를 쫄딱 맞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걸 우리 직원이 주워왔다. 나와 아이컨택을 시도하며 ‘데려가주세용’하기에 대뜸 OK를 외쳐버렸지. 촬영한다고 스튜디오에 데려왔더니 외로운 은둔형 아트들이 어찌나 자주 놀러 오던지…. GG랑 부비적거리는 너희를 보자니 내 마음도 짠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다락방이 있다,
소설가 천운영
2000년 소설 <바늘>로 등단해 단편집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장편소설 <잘가라 서커스> 등을 펴낸 소설가. 천운영 특유의 ‘육식성 미문’은 그 어떤 문장보다 깊게 뇌리에 남고,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작년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생강>을 발표한 후,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소설을 쓸 생각이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12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스케치하거나, 조용히 커피를 볶으며 그녀만의 애정을 담아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1.새벽 4시와 아침 7시 사이
올빼미 생활 끝의 깨달음. 새벽 4시부터 7시가 가장 창의력이 샘솟는 시간이라는 것. 오후 3~4시에 슬쩍 일어나서 뭉그적거리다 밤 12시부터 입질을 걸면, 새벽 3~4시에 발동이 걸린다. 문제는 정작 그때가 되면 너무 졸린것! 그래서 요즘 아침형 인간을
시도하고 있다. 6시에 일어나 공복 상태에서 전날 작업을 되돌아본다.
2.총량
연애에도 총량이 있고, 공부에도 총량이 있다. 소설에도 분명 총량이 있을 것이다.
3.우물
30대는 가득 차서 찰랑찰랑한 우물이었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30년 동안 몸에 내재된 어떤 것들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그냥 길어내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10년을 퍼내다보니, 이젠 우물을 천천히 퍼내야 할 것 같다. 한 번을 길어도 실패 없이, 그리고 내가 갖고 있던 세계와 다른 세계를 합쳐서 새로운 우물을 만들려 한다.
4. 소설=똥
당기는 것을 먹고, 때론 원치 않는 것도 먹고. 그렇게 피가 되고 살이 돼서 시원~하게 싸는 똥이 소설이다. 때론 다 소화하기 전에 토하기도 하고, 얹혀서 활명수를 먹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 속에 남아서 단단해진 것, 쌓일 대로 쌓여서 이제 나가야지, 하고 밀어내는 굵직하고 시원한 것.
5. 장점 구분하기
남들이 말하는 내 장점과,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장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6. 아이디어에 기대기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 아이디어에 기댄 소설은 딱 1년 간다고 본다. 차라리 제대로 똥 싸는 법을 연습해야지.
7. 응시
응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하지만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아이의 눈으로 보는 것. 나 몰라. 저거 뭐지?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한 것도, 이게 뭐지? 바깥을 향해서도 응시하고, 자신을 향해서도 응시한다.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인물이, 서사가 나온다.
8. 다락방
누구에게나 다락방이 있다. 무언가를 숨겨놓기도 하고, 숨기 위해 들어가기도 하고, 음침하면서도 아늑한 그런 공간. 엄마 아빠가 일을 나가면 하루 종일 다락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몇 권 없는 책을 짜깁기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엄마는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혼자 쫑알쫑알 천장을 보며 중얼거리고…. 다락방은 내 상상력의 원천이자, 숨는 곳이자, 죄책감의 공간이다.
9. 그녀의 눈물 사용법
서너 살쯤의 기억. 한밤중에 무언가를 감싸서 돌아온 아빠와,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던 엄마. 그리고 다락에서 아주 가느다랗게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저 위에 뭔가 ‘있다’는 느낌. 하지만 나는 착한 아이니까, 물어보면 안 돼. 그렇게 칠삭둥이 동생은 고스란히 소설로 남았다. 나는 그 애를 못 살렸지만, 참 오래 기억하면서 예뻐했던 것
같다. 가끔은 ‘너 내 덕분에 소설로 남은 거야’ 하고 눈을 흘기며 웃기도 하고. 죄책감에 휩싸여서 뭔가를 못하게 되지만 않으면, 건강한 죄책감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10. 전기놀이
그렇게 술로 ‘해갈’을 했다. 몸이 힘들어서 이젠 딱 끊었지만. 사실 스트레스는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즐겁기도 하다. 어렸을 때 하던 전기놀이처럼, 피가
안 통하다가 찌르르 하고 전기가 흐르는 느낌.
11. 계란프라이
<생강> 때 일인데, 연재는 도중에 수정할 수 없잖아.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소설 방향이 5도 정도 틀어진 거야. 다시 5도를 돌려놓기 위해 몇 회를 더 소비하느냐,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느냐. 그렇게 고민하면서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보는데, 세상에, 눈에 핏줄이 터져 있더라. 얼마나 핏발을 세우며 고민했던지 마치 계란 노른자가 터진 것 같은 피멍이 손바닥만 하게 번져 있었다.
12. 마이 리틀 블랙 드레스
왜 옷장에 검은색 옷밖에 없을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니 더 그렇게 된다. 검은색 자체도 느낌이 참 다르더라. 붉은 기가 도는 것, 푸른 기가 도는 것…. 그 미세한 차이를 찾고 싶은 건가? 주변에선 ‘딱 지같은 것만 골라요’라고 타박하지만, 자꾸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걸 어떡해.
13. 거울아 거울아
책상에 3면으로 거울이 있다. 누가 되게 자아도취적이란 말을 하긴 하던데. 한참 집중하다가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너무 무서운 거야. 거의 거울을 깨뜨릴 것 같은 표정! 그럴 때마다 릴랙~스! 하면서 얼굴을 푼다. 지금 죽자고 하는 거 아니니까 정신차려. 살자고 하는거야. 정신 차려. 거울이 없으면 글을 못 써서, 여행을 가더라도 꼭 손거울을 챙긴다.
이노션 월드와이드 ·
이재익 PD ·
양승규 CD ·
오유경 국장 ·
소설가 천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