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애드 조봉구 자문
3월 한 달치 신문을 쌓아놓고 한 장 한 장 펼쳐본다. 신문이란 원래 하루 하루 그 날의 것을 읽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렇게 30일분을 세 시간에 압축해서 보니까 느낌이 새롭다. 첫째는, 평소 느끼던 대로 부동산 광고가 역시 무척 많다. 부동산 광고가 없는 날이 하루도 없으며, 그것도 하루에 몇 건씩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는 혹독하게 얼어붙었다는데 어떻게 부동산만 이렇게 호황인지, 이렇게 집을 많이 짓는데 어째서 집이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부동산 광고는 크기도 모두가 전면이거나 두 페이지 스프레드로 대형이다. 둘째는, 해외 브랜드 광고가 대단히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이른바 명품 브랜드로부터 화장품, 전자제품, 자동차, 휴대 전화기까지. 단 하루도 해외 브랜드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날이 없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신문이 해외 브랜드 광고들로 가득차게 되었는지 놀랍다. 상대적으로 우리 나라 회사나 브랜드는 LG, 삼성, SK 등 몇몇 특정 회사나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역시 우리 기업들이 경기가 좋지않아 광고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 TV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듣는 이야기로는 인쇄 매체 광고 시장은 쉽지가 않은데 TV는 여전히 포화상태라니 이 역시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세째는, 흑백 광고는 과연 효과가 없는 것인가? 큰 광고가 반드시 효과적일까?하는 의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의문일 수도 있는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그만큼 신문 광고들이 천편일률 컬러로만 되어있고, 또 많은 광고들에서 될 수 있으면 큰 지면을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서려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느끼는 것은 읽히기 위한 광고이든 보여주기 위한 광고이든 광고는 역시 남다른 특징과 묘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 크리에이티브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림푸스(디지털 카메라), 휴렛 패커드(디지털 카메라, 프린터), 이건(창호, 마루) 광고는 나름대로 특징과 묘미를 지닌 광고라 할 수 있다. 올림푸스는 광학 카메라가 별로 명성을 얻지 못한데 비해(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디지털 분야에서는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카메라 메이커이다. 광고는 사진 전문가를 위한 디지털 카메라 광고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디지털의 정확성과 냉정함보다는 아날로그의 체취와 호흡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 CD시대에 레코드판을 고집하고, 진공관식 오디오에 향수를 느끼며, 여전히 무거운 광학 카메라를 고집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광고는 전문가들의 이러한 인식의 장벽에 도전하는 광고라 할 수 있다.
도전의 광고적 무기는 전문 사진작가가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과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증언)이다. 말하자면 시각적 언어적으로 동시에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접근법과 분위기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 카메라가 구현하는 ‘풍부한 색감과 화질’이 신문 인쇄의 한계를 극복했는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 광고는 집행상의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잔 재주나 기교가 없이 전문가를 향한 메시지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휴렛 패커드의 광고는 올림푸스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올림푸스 광고가 설득을 위한 광고라면 이 광고는 알리기 위한 광고이다. 올림푸스가 읽히기 위한 광고라면 이 광고는 보여주기 위한 광고이다. 올림푸스의 비주얼이 사실적이라면 휴렛패커드의 비주얼은 조작적이다. 무엇보다도 올림푸스가 아날로그적이라면 휴렛 패커드는 디지털적이다. 이렇게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는 또 이 광고 나름대로 장점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이색적’이라는 점, 그래서 분명하게 시선을 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피는 한국어에 익숙치 못한 제3국인 썼거나, 카피를 모르는 사람이 외국어를 번역한 것처럼 어색하다. 글자체 역시 카피의 양에 비해서 읽기에 그리 익숙한 글자체가 아니다. 설마 이것까지 이색적으로 느껴지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 분석이라는 작업을 하기도 전에 직감적으로 광고를 만든 사람의 재주와 광고가 지닌 창의성이 느껴지는 광고가 ‘이건’ 나무입니다”라는 광고이다. 크리에이티브란 비타민 약 대신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을 먹는 것과 같은 일이다. 맛이 있어야 한다. 향기가 좋아야 한다. 먹고 싶어야 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풍부한 비타민을 섭취하게 된다. 이 광고야말로 바로 그렇게 맛있고 향기롭고, 그러면서도 비타민이 아주 풍부한 과일 같은 광고이다. 보는 순간 "이것은 나무입니다"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이건 회사가 키우는 나무입니다"고 하는 헤드라인의 중의성(重意性)이 느껴진다. ’’이건’’이라는 회사 이름을 이렇게 쓴 재치에 공연히 즐거운 미소가 떠오른다. 그렇게 웃다가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회사가 자기네가 쓰는 나무를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서 직접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하고 깔끔하고 재치 있고 즐거운 광고, 그러면서도 부담 없이 정보를 전하는 광고, 근래에 본 광고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광고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