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세포가 광고를 사랑하는 이유
광고계동향 기사입력 2024.08.20 05:40 조회 406

 글 남우리 대표 | 스튜디오좋

난 인사이드 아웃에서 “불평세포”가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반절의 불평 세포와 반절의 불안 세포가 날 통제하고 있었을 거다. 이런 나에게 광고일은 자주 거지같다. 촘촘하게 계획한 크리에이티브가, 누군가의 한 의견으로 모든 게 뒤틀리는 경우가 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 일정 다 잡아놨는데도 온갖 “이슈”로 어그러진다. 크리에이터로 뽕이 차다가도, 막상 대중적인 크리에이터(영화 감독, 소설가 등등)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크리에이터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어서 짜증난다. 대행사에게 불리한 구조를 유지한 선배들도 자주 탓한다. 이렇게 불평투성이인 내가 13년이나 광고일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거지 같은 광고일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를 술 한 잔 한 듯, 늘어놔본다.

1) 미칠 것 같은 순간, 끝난다.
광고 캠페인은 짧게는 3개월이면 한 프로젝트가 종료된다. 소설, 영화 등 다른 크리에이티브한 직업군과 비교한다면 꽤나 짧은 편. 날 아무리 괴롭히던 일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끝이 온다는 거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영화 한 편 만드는데 적어도 2년 걸린다는데, 2년동안 한 작품이라니… 미칠 것 같으면 끝나고 완전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불평이 펼쳐진다. 지겨울 새가 없다.

2) 언제나 날 돕는 사람들이 있다.
광고는 팀웍이다. 한 때는, 온전히 내 아이디어로 온에어됐는데, 왜 모두가 크레딧에 올라가는지 불평불만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프로젝트에서 도움 하나 안 되는 쩌리 신세가 되며 알게 됐다. 오타 수정이나 했던 (그나마 오타도 다 못 찾아서 혼났던) 나도 그 프로젝트의 카피라이터로 기록됐다. 매 순간 창의적 일 수는 없는 내가 가끔은 선봉장으로, 가끔은 응원단으로 프로젝트에 함께할 수 있다. 게다가 쩌리일때도 월급의 변동은 없었다!

3) 정답이 없다.
광고는 트렌드와 함께 흘러가는 유수풀이다. 한 달 전의 정답이, 다음 달엔 고리타분 오답이 되기도 한다. 그 말은 광고는 우리 학창시절의 내신과는 달라서, 한 달 전의 전교 꼴찌가 다음달의 전교 일등이 될 수 도 있다는 거다. 스타는 지속적으로 바뀌고 그만큼 누구에게나 크리에이티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신입사원도 아이디어만 좋다면, 메인 아이디어 온에어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위아래 없는 직업이 또 어디에 있을까!

4) 삶이 바뀌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어느 순간 크리에이티브의 정체기가 왔었다. 이렇게 도태되는구나… 했는데, 애를 낳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떠올릴 수 있는 인사이트로 작업하니, 완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나오기 시작했다. 광고의 장점 중 하나는, 내 삶의 색깔 자체가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애 키우는 게 끝나면 이제 또 어떻게 인생을 바꿔야 새로운 크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이긴 하다. 크리에이티브를 위해 이혼할 수도 없고…

5) 멋진 작품이, 내 불평을 레드썬한다.
온갖 불평으로 점철됐다가도,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 다 까먹어버린다. “이러려고 힘들었나봐”라고 말하며 또 다시 다가올 새로운 프로젝트에 바보처럼 설렌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자주 온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광고는 상대적으로 한 작업의 기준이 짧기 때문) 그렇게 수많은 광고인은 불평과 치매증상을 반복하며 현업을 유지할거다. 내가 광고일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멋진 작품을 할 희망이 지속적으로 찾아 온다는 것.

내 불평세포는 13년동안 컨트롤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광고 역시 놓지 않았다. 불평세포가 당신에게 광고일을 떠나라고 말하고 있다면, 이 글을 한 번쯤은 떠올려주길. 그래도 뭐 떠난다면 붙잡을 순 없다.
adz ·  7/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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