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F 작가 테드 창의 단편 ‘인간 과학의 진화’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먼 신종 인류 ‘메타휴먼’이 등장한다. 이들은 과학 분야의 선두에 서서 혁신과 발견을 빠르게 이룩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지만 인간들은 소외된다. 동물이 인간의 과학적 성취를 이해하지 못하듯, 메타휴먼의 연구 성과는 일반 인간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SF 속 세상에서 일반 인간들은 메타휴먼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의 일부만을 다루며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인간 이후의 존재는 이렇듯 뭔가 무시무시하거나, 인간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인간 다음의 존재로 주목받는 AI는 우리와 비슷한 외형과 성격(?)을 가진 친근한 모습 쉽게 말해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다. 현시점의 생성형 AI, 예컨대 챗GPT는 그 작동 원리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것의 입출력은 복잡한 자연과학이나 공학 개념보다는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쉬운 이미지와 언어를 중심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테드 창이 그린 미래와는 상이하게 다르다. AI의 활용이 학문과 엔지니어링보다는 우리 일상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번 칼럼에선 현대의 생성형 AI가 비즈니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우리 일터를 어떻게 바꾸지는 조망해 보고자 한다.
영업 사업을 대체하는 AI의 힘, 초개인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에서 고객 확보 비용을 기준으로 한 마케팅 전략을 설명한다. 그는 고객 확보 비용이 1만 달러 이상일 경우 전문 영업 사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100달러 미만이면 매스 마케팅이나 바이럴 마케팅을 추천한다. 그 사이의 비용대, 즉 ‘데드 존’에선 시장이 존재는 하지만 파편화되어 있어 이를 대상으로 한 세일즈 팀 운영이 이윤을 가져오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AI의 발전은 이 ‘데드 존’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 세일즈와 마케팅 또한 더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AI는 사용자의 프로필, 행동, 그리고 피드백을 분석해 소비자 개개인에게 맞춘 제품 추천, 광고, 이메일, 랜딩 페이지, 소셜 미디어 게시물 등을 제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추천 시스템과 같은 AI 기술이 롱테일의 니치 마켓 수요를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앞으로 고객들은 그들의 구매 이력과 니즈를 정확히 알고 있는 AI 어시스턴트와 대화를 나누며 인사이트 가득한 쇼핑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GPT-4 기반의 AI 영어회화 튜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픽 (출처 : 스픽 홈페이지)
AI는 제품의 효율성과 규모에 관한 지형을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에듀테크 분야는 전통적으로 학습 수준의 개인별 차이로 인해 대규모 제품화가 어려웠다. 인터넷 강의는 있었지만, 교육 소비자는 인터넷 강의에 더해 스스로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학습하는 등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AI를 통해 실시간 대화와 피드백을 제공하는 과외 선생님 같은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실제로 여러 서비스가 출시했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예컨대 영어 교육 앱 ‘스픽’은 2022년 GPT-4 기반의 AI 영어회화 튜터를 도입하여 1달 만에 200만 건의 수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크리에이터의 똑똑한 비서가 된 AI, 크리에이티브 자동화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독자라면 특히 주목해야 할 트렌드도 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자동화다. 미국의 스타트업 ‘재스퍼’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마케팅 콘텐츠 자동화에 혁신을 가져왔다. 블로그 기사, 소셜 미디어 게시물, 그리고 광고 문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신속하게 생성할 수 있는 이 기술은 특히 구글과 메타와 같은 대표적인 광고 플랫폼에서 광고 최상단 노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카피 작성에 특화되어 있다. 작년에만 1억 1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여 유니콘 기업의 자리를 확정한 ‘재스퍼’는 올해 예상 매출이 9000만 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은 생성형 AI의 마케팅 영역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루고자 하는 서비스 혹은 제품의 광고 카피 및 소개글 등을 다양한 스타일로 작성해주는 AI 서비스 재스퍼 (출처 : 제스퍼 홈페이지)
생성형 AI의 도입은 마케팅팀이 높은 품질의 콘텐츠를 더 빠르게,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이 기술을 활용하여 초안을 신속하게 작성할 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아이디어 탐구와 독창적인 조합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결국 전체 팀의 창의력을 극대화시키고, 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생성형 AI는 마케팅뿐만 아니라 글쓰기, 사진 및 영상 편집, 디자인과 같은 창의적이면서 반복적인 작업이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핵심적인 메시지나 독창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창작의 힌트를 제공하거나 보조적인 업무를 효율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 패션모델이 나 대신 신발을? 몰입도 높아진 사용자 경험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이미지, 비디오, 음악 등의 다양한 콘텐츠에 생성형 AI를 접목하는 시도는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AI를 활용하여 디자인된 나이키의 혁신적인 신발 이미지나 AI 딥보이스(특정인의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서비스)를 활용한 브루노 마스의 감각적인 뉴진스 커버 곡은 우리에게 전에는 없었던 즐거움을 제공한다.
다양한 체형의 가상 모델에 내가 고른 옷을 입혀볼 수 있는 구글 서비스 버추얼 트라이온
(출처 : 구글 공식 블로그)
생성형 AI로 만들어 내는 재밌는 콘텐츠들은 많지만, 비즈니스적으로 풀어낸 서비스를 하나 살펴보자. 2023년, 구글은 패션과 관련한 ‘버추얼 트라이온’ 기능을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다양한 체형과 신체 크기의 가상 패션모델을 제공하며, 사용자가 옷을 선택하면 해당 모델이 그 옷을 입은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 가상 시뮬레이션의 품질은 충분히 높아, 소비자들이 옷을 구매하기 전에 자신의 체형에 어울릴지 예측하게 돕는다. 이 같은 혁신적인 접근은 구매 결정의 간편성과 확신을 높여,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고 있다.
인간에게 호감 주는 존재로 진화하는 AI
개와 인간은 수천 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 개의 외모에 대한 변화는 인간의 선호에 따른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큰 눈, 둥근 얼굴, 짧은 주둥이와 같은 ‘베이비페이스’ 특징을 지닌 개들은 인간에게 더 애정을 받아 번식 기회가 늘었을 것이라는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세상에 또 하나의 주역으로 찾아올 AI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는 복잡한 어셈블리 언어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자연어 처리를 통해 우리와 소통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컴퓨터로 어떤 성과를 내려면, 다양한 활용법부터 코딩까지 여러 기술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현재 진화하고 있는 AI는 얼굴을 맞대고, 손쉽게 대화하며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 세상에 우리와 함께하게 될 존재인 AI는 테드 창 소설 속 메타휴먼처럼 인간과 동떨어진 초지능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AI는 앞으로 인간이 더 호감을 느낄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AI는 우리의 일상과 비즈니스를 바꿔 나갈, 인간의 얼굴을 한 파괴적 혁신으로 봐야 한다.
김영민 아마존 웹 서비스 데이터 과학자
서울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IT와 금융 업계에서 데이터 과학자 및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일했다. 다양한 머신러닝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론칭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현재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에서 여러 기업의 비즈니스 문제를 AI로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 ‘데이터 과학자 원칙'(골든래빗)과 역서로 ‘머신러닝 시스템 설계'(한빛미디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