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국은 바로 ‘꿈과 환상’이란 단어에 다름 아니었다. TV에서 방영되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 특히 크리스마스 시기를 다룬 내용이 방영될 때면 마치환상처럼 펼쳐지는 그 세상이 지구 너머 유토피아의 얘기처럼 들렸다. ‘미제’라는 말이 질 좋은 비싼 제품이란 의미로 통용될 정도로 미국은 그렇게 우월하고 멋진 나라로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잠시 미국에서 살다 전학 온 아이가 혀 꼬부라진 영어를 쓰면 기가 죽었다.
친척이나 지인 중에 누가 미국으로 이민 간다든가 주재원으로 나간다든가 하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정확한 사정이 뭔지 몰라도 어린 마음에 그 사람은 굉장히 출세한 사람으로 느껴졌었다. 월남으로 파병 갔다 온 친척의 집에 TV? 녹음기? 환등기를 비롯해 갖가지 신기한 물건이 가득 채워진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미국의 대단한 힘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미국의 팝송을 외우고 부르면서 영어를 익혔고, AFKN의 솔리드 골드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미국식 엔터테인먼트에 맛들였었다.
게다가 가장 큰 견제 세력이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덩달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면서 거대한 힘을 발휘하던 미국산 자본주의 사회는 확고한 승리의 종지부를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직선제로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대한민국은 비로소 민주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정치 소식으로가득 찼던 9시 뉴스에선 서태지의 힙합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달콤한 자본주의 논리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해외 여행이 자유화되면서 교환학생 또는 배낭여행으로 대학생들이 대거 미국에 다녀왔고, 캠퍼스엔 배낭을 메고 생수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현재, 여전히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이며 한국과는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다양하게 얽혀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유학생은 미국을 목적지로 선택하고 있고, 이민자들도 여전히 미국으로 몰리고 있으며, 대기업의 글로벌 브랜딩 전략도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9.11 테러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2008년의 경제 파탄으로 미국 경제가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음엔 틀림없다. 최근 월가에서 있었던 ‘We are the 99%’라는 시위는 미국의 현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미국 젊은이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으면서 더 이상 미국이 전 세계 패권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집단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게다가 새로운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은 위안화를 세계 공통 화폐로 지정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전파하면서 미국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가 어렵다 해도 미국은 여전히 큰 집이다. 세계의 여론을 형성하고 있고, 새로운 사회문화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들은 최초로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IT가 실생활에 밀접하게 접목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지구촌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지금 전 세계의 광고계는 이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2012년 현재 미국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4.8 빌리언(Billion)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전체 광고 매출에서 디지털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한다. 한마디로 디지털,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의 4대 천왕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역시 미국의 기업이다. 뿐만 아니라 노래, 패션, 모델, 디자인을 주제로 그들이 만든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바다를 건너와 우리식으로 약간의 변형을 거쳐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의 목록에 올라 있다.또한 미국은 FTA(자유무역협정)의 규정을 통해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그 규정에 따라 우리네 일상의 경제 생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전 세계의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먼저 나서서 세계가 동참하고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슈메이킹에도 앞서 나가고 있다. 여전히 전 세계의 인재들은 미국으로 몰려들어 대학 교육을 받고 있고, 미국은 그들이 미국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 인재들이 떠나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일하게 되더라도 결국 미국에 우호적일 수 있는 수많은 잠재 오피니언 리더들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최근에 잠시 뉴욕에 다녀왔다. 입국 심사장에서 미국 땅을 밟도록 허용받는데 3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아랑곳 않고 천천히 지문을 스캔하고 눈동자를 촬영하면서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출국할 때도 나는 마치 건강 검진하듯 전신 촬영을 해야만 했다.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미국엔 사람이 몰린다. 관광을 위해서건, 비즈니스를 위해서건, 학업을 위해서건 간에…. 그 큰 집엔 여전히 볼 것이 많고, 여전히 기회가 많고, 여전히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God Bless America. 그들의 애국가에도 나오듯이 미국은 신의 은총이 충만한 나라가 아니던가.
[탁톡 Tack talk] 여전히 미국은 큰 집이다
제일기획 ·
탁톡 ·
김홍탁 마스터 ·
미국 ·
미국이야기 ·
God Bless Ameri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