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자 한예슬 씨가 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녹화를 펑크내고 미국으로 잠적했다는 소식이 요 며칠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한예슬 씨와 담당PD 간의 불화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는 게 중론인데, 개인적으론 그것이 그녀의 평소 행동의 문제건 담당PD의 조율능력의 부재가 문제건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그 가십에 한 줄을 더 보태고 싶지도 않다.
작금의 문제는 아슬아슬한 롤러코스터에 올라 있는 현 연예 엔터테인먼트산업 전반의 총체적 문제이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부터가 막막하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광고산업은 연예 엔터테인먼트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그 불똥이 광고계까지 튀는지라 앉아서 관망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연예산업은 스타 만들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뭐 그것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미국 헐리우드가 전 세계 연예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으면서 뿌리내린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특히 SM이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여 스타만들기를 체계화시킨 이후 우리네 연예산업은 ‘스타 생산-각종 연예프로그램의 스타 출연-스타가 매개가 된 콘텐츠 사업’이라는 프로세스가 톱니바퀴 물리듯 돌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가요와 드라마가 한류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대한민국=연예강국’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것도 이 좁은 나라에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스타 마케팅의 폭풍성장을 이뤄온 결과이다.
특히 근래의 연예산업엔 우리만의 공식 비슷한 것이 생겨나고 있다. 연예인들은 먼저 자신의 재능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가수면 노래로, 아이돌이면 댄스와 노래로, 연기자면 연기로, 그리고 몸매가 되는 사람들은 패션모델로 시작한다. 그러다 그 분야들이 서로 크로스오버가 되기도 한다. 가수나 모델들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연기자들도 디지털싱글과 같은 음원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들이 좀 뜨게되면 광고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한다. 다시 말해 이 시대의 연예인들은 재능의 구분 없이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한예슬 씨도 처음엔 수퍼모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의 연기자이자 광고의 스타모델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연예산업 구조는 스타들 모두를 흡수할 충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에 스타 마케팅의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톱스타들은 쇄도하는 출연요청을 어떻게 가려내고 수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쳐낼 것인지를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들에겐 드라마?예능?음악?광고와 같은 콘텐츠가 끊임없이 수혈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점에 있는 스타의 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그들이 출연해야 할 콘텐츠의 수는 엄청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TV프로그램은 뉴스 정도를 빼놓으면 드라마?예능?광고로 모든 채워져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종편채널까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더욱 많아진 콘텐츠를 채울 엔터테이너들을 어떻게 수급할지 걱정이다. 항간에는 강호동의 1박2일 하차가 종편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를 보는 것은 광고계, 그 중에서도 촬영을 담당하는 제작 쪽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볼 때 톱스타급 연예인들과 광고 촬영을 할 경우 그들은 여지없이 밤을 새고 온다. 쪽대본에 쫓기는 드라마 촬영 때문이거나 지방 공연과 같은 행사 때문이다. 광고 촬영장에 도착해서는 이미 에너지 고갈 상태다. 한두 신을 촬영하다가 병원으로 링거를 맞으러 가는 일이 다반사다. 연민이 생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우리는 광고주의 큰 돈을 지불한 만큼에 해당하는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불공정한 게임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연예인들이 기본적으로 광고는 그냥 돈 버는 여가선용 정도의 행위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촬영 콘티를 들여다 보는 이유도 어떤 신에서 어떤 연기를 펼친 것인가의 고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도 얼만큼의 분량이 남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일 때가 많다.
게다가 일부 연예인들은 촬영장에서 이러저러한 내용은 못 찍겠다고 버티기도 한다. 미리 촬영 콘티를 제시하고 그 내용에 의거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연 그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PD나 감독이 연기를 지시를 했을 때도 그런 태도를 보일 것인가? 광고를 우습게 알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가장 짧은시간에 가장 많은 개런티를 확보해주는 것이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광고계 스스로도 잘못한 면이 없지 않다. 어떤 이유로든 ‘광고=연예인의 개인기’란공식을 심어놓은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너 어제 새로 나온 광고봤어?”란 질문에 “누구 나오는데?”라고 되묻는 것이 일상 아니던가. 지금처럼 광고가 연예산업에 종속되어 있는 한 브랜딩을 위한 아이디어의 창출은 계속 난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