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격동기와 경제성장기(1945년~1968년)
09 춘계광고학술심포지엄 | 한국광고학회 | 8 pages| 2009.05.27| 파일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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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요약
일제시기의 근대 광고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광고와 소비의 시대는 해방이후 일제의 패퇴와 미군정,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동과 전후 피폐한 경제 속에서 정체기를 보내야 했다. 신탁통치를 통한 국토분단, 1948년의 정부수립, 3년에 걸친 한국전쟁, 1960년 4.19혁명과 이승만대통령의 하야, 과도정부,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혁명 등을 겪는 동안 국내경제는 극심한 물자부족과 경제난을 겪어야 했고 한국전쟁과 복구기, 경제개발을 거쳐 1968년에야 겨우 1인당 GNP가 200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1955년을 전후한 시기의 무역의존도는 수출 1.5%, 수입10.6%였으며, 이는 해방전(1938년)의 각각 29.6%와 35.5%와 비교하면 무역은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대량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외국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해방이후 1960년대 이전 1950년대의 광고시장은 별반 성장할 계기도 기반도 없었다. 각 신문마다 광고란이 있기는 했지만 신문 자체가 2면, 4면정도로 발행되었고, 광고란은 오히려 1920-30 년대에 비해 초라했다. 기업 활동이 거의 없고 소비재 광고도 당연히 없던 이 시기에 돋보였던 것은 오히려 정치 광고다. 이승만정권의 집권연장을 위한 선거 전략과 야당의 공세는 우리 정치광고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급성장한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박정희 정권은 전형적인 제3세계 근대화론의 형태를 따른다. 박정희주도의 정권의 경제개발에 힘입어 우리나라 재벌의 상당수는 1950년대 중반에 출현하고 실질적인 성장은 1960년대 초부터 이루어졌다. 박정희의 산업정책은 크게 1960년대부터 1971년까지, 다시 말해 제 1,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행된 도약기와, 1972년-1979년까지의 제 3,4차 경제개발 5개념 계획과 중화학공업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도약기인 1960년대는 한국경제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빈곤문제를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수출지향적 산업화 전략에 따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근간으로 본격적인 차관도입, 수입대체산업 육성, 그리고 수출 드라이브정책 등을 적극 추진했다(조동성, 1990). 이런 경체체제 속에서 독점적으로 성장한 럭키와 금성, 삼성과 현대 등 대표적인 기업이 드디어 국산 가전제품과 국산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 광고 역시 경제 활성화와 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도약하기 시작한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 속에서 점차 한국 현대 광고와 소비의 기틀도 다져지기 시작했다.
목차
1. 서론

2. 광고환경의 시대적 특성
1)광고매체
2)광고주

3. 광고 크리에이티브와 문화
1) 정치 광고의 등장
2) 라디오광고와 CM송의 등장
3) 가전제품 광고의 등장
4) 대중문화의 기수, 영화

4. 결론

참고문헌
광고역사 근대광고 무역의존도 신문광고 정치광고 이승만정권 방정희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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