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REPORT] IS IT REALLY O.K? 나만 웃으면 돼!
TEXT. Jung Duk Hyun (Columnist)
<1박2일>에서 흔히 보는 한 장면. “나만 아니면 돼!” 복불복 게임에서 승자가 이렇게 외치면 패자는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하는 멍한 표정으로 승자를 바라본다. 이윽고 어김없이 따라오는 자막 ‘무한 이기주의’. 가위바위보 하나로 누군가는 혹한기에 한데서 잠을 자고, 누군가는 군불 땐 따뜻한 아랫목에서 자는 운명이 갈리는 그 순간, 출연자들의 리액션에는 아마도 진심이 들어 있을 것이다. 꽤 많이 반복되어 이제는 식상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웃음이 피식피식 비어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이 원초적인 웃음의 이유는 뭘까.
마빡이가 마빡을 때릴 때 우리는
Hit and Laugh, and Hit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들어있다. 웃음을 주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지만 그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약간의 가학이 필요한 법이다. 가학은 벌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결국 웃음을 목적으로 허용되는 가학의 상황 속에서 ‘나만 아니면’ 다른 사람이 걸려도 상관없다는 얘기다. 누군가의 고통이 나에게는 웃음이 되고, 때로는 고통을 받는 이들조차 웃는 장면은 우리에게 아무런 죄책감도 주지 않는다. 즉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은 “나만 웃으면 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코미디에서 가학은 단골 소재다. 슬랩스틱의 대가인 심형래는 ‘변방의 북소리’ 같은 유명한 코미디 코너에서 끊임없이 죽도로 두드려 맞는 것으로 대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심형래 본인의 입장에서는 피학이지만 때리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가학이 된다. 본래 가학과 피학은 동시에 나오기 마련이다. 약간은 바보스러운 캐릭터를 세워두고 계속해서 때리고 놀리는 코미디들은 <유머 일번지>와 <쇼 비디오자키> 같은 콩트 코미디 전성시대의 단골 소재였다.
물론 이런 가학적인 소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이 나오면서 누군가 누구를 때리는 설정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가학적인 소재가 사라진 건 아니다.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가학과 피학은 코미디가 현실을 뒤틀어 웃음을 주는 하
나의 중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의 가학적인 코미디가 당대 권력의 원초적인작동 방식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 가학의 방식은 새롭게 변모한다. 즉 스스로 자신을 가학하는 방식으로 보여지거나 혹은 풍자의 방식으로 표출되거나.
<개그콘서트> 마빡이의 인기는 이 가학과 피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스스로 관리되고 통제되는 시대의 징후를 보여준 것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마빡을 때리는 것으로 웃음을 주어야 생존할 수있는 시대.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흔히 ‘자기
관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강박적인 가학과 피학의 밑그림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자기계발서’의 봇물은 마빡이의 그 절박한 동작에서 이미 감지되었던 셈이다.
웃음의 화살이 나를 향할까봐 우리는
To Be or Not to Be
그러나 코미디가 보여주는 가학적인 요소가 무조건 비판할 것만은 아니다. 가학은 그 대상을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올 수 있다. 1980~1990년대에 심형래로 대변되는 어딘지 모자란 바보(낮은 자)에게 행해지던 가학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김형곤으로 대변되는 높은 자들에 대한 가학이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풍자라 부른다. 현실의 권력자들을 코미디 소재로 끌어와 거침없이 비틀고 조롱했던 풍자 코미디의 전통은 <개그콘서트>의 동혁이형이나 공감개그의 일인자 최효종 등을 통해서 그 명맥이 이어져왔다. 똑같은 말의 가학이라도 그 대상이 낮은 자가 됐을 때와 높은 자가 됐을 때는 이렇게 다르다.
확실히 지금은 ‘웃음’이 만사가 된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가학이든 피학이든 또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상관없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재미’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게 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재미’는 진리나 윤리, 도덕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과거 진선미(眞善美)에서 진(眞)과 선(善)이 미(美)보다 우위에 있었다면 이제는 미(美)가 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미학적인 것이 주는 재미가 진리나 선보다 앞선다는 얘기다. 정사(正史)에서 벗어나면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던 1990년대 사극과 이제 역사의 차원을 넘어서 판타지와 SF적인 요소까지 뒤섞인 오늘날 퓨전사극의 변화를 보라. 또 타블로나 최민수처럼 제아무리 진실을 드러내고 도덕적 입장을 끄집어내도 ‘재미’의 차원으로 폭력이 행하는 작금의 흐름을 떠올려보라. 재미는 이제 모든 것을 압도한다.
“나만 아니면 돼!” 혹은 “나만 웃으면 돼!”라는 극단적 이기주의 속에는 강박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극도의 불안감이 녹아 있다. 누군가의 재미를 위한 가학은 누군가의 피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는 일. 그래서 “나만 웃으면 돼!”는 동시에 이렇게 들리기도 한다. “혹 시 나라면 어떻게 하지?” 어쩌면, 이 불안감이 거꾸로 극도의 재미만을 추구하는 사회를 추동하는 건 아닐는지.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2주 연속 15%대의 시청률을 찍으며 2011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음 스타개그맨을 발굴해야 할 ‘세대교체’와 함께 ‘몸개그혹은 입담개그’의 양극화를 벗어나야 할 미션이 주어진 셈.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만큼 현실 공감에 기반을 두고 때론 날카로운 풍자도 서슴지 않는 코미디가 필요하다.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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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 ·
풍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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