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의 밤] ‘운’도 크리에이티브 중의 하나일까?
안녕하세요? 저는 운(運)이라고 합니다. 흔히 운수라고도 하는 데요. 이미 정해져 있어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기운을 말하죠. 보통 사람들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말끝마다 저의 이름을 대곤합니다. ‘참 운도 좋아?’, ‘운이 좋아서…’, ‘운이 없어서…’, ‘운이 다해서…’.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나 과학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게 크리에이티브인지라 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작할 땐 평범한 소재의 아이디어였지만 사회적으로 마침 그 소재
가 이슈가 되어 뜨거나 경쟁사의 실기로 우리 광고가 더 돋보이는 경우, 시안
단계에선 뭔가 불안불안했던 크리에이티브가 막상 제작해 보니 괜찮아져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 저의 존재감은 확실해집니다. 이럴 땐 카피와 아트 그 사이에 저 ‘운’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많습니다. 시안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지만 보고 단계에서 악재가 발생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내용과 별 상관없는 이유로 패배를 맛보는 경우, 크리에이티브 외적인 이유로 어카운트가 바뀌는 경우,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위에선 몰라주는 경우…. 이럴 때 보통 제가 없다고 하거나 제가 따라와 주지 않는다고 하죠. 이쯤 되면 이런 말이 나오죠. ‘운도 실력이다!’
올 한 해가 거의 끝나갑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 중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제가 처음엔 곁에 전혀 없는 척하다가 나중엔 함께 있어 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게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메이저리거입니다. 그의 선수 생활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는데요. 한 경기에 도루를 13개나 허용해 메이저리그 웃음거리가 됐던 무명의 투수는 훗날 탁월한 구단 매니저로 혁신적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메이저리그에서 인종 편견을 없앤것도, 타자들이 헬멧을 쓰게 된 것도 이 사람 덕분이라네요).
그는 생전에 저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Luck is the residue of design).’
그렇습니다. 그는 적어도 저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 그 노력이 너무 평범해서 제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남다른 진로를 개척해 제가 있을 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주니 제가 곁에 있을 수밖에요.
‘올해엔 내가 운이 좀 없었지, 새해엔운이 좀 있으려나?’ 하고 머릿속으로 저를 막연하게 떠올리는 것보다 한번 저에 대해 섬네일을 해보면 어떨까요?
새해 어떻게 운을 만들어 갈 건지 스토리보드를 그려 보세요. 저도 계획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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