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 한 모퉁이를 차지했던 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사슴”의 시인 노천명이 쓴 또 다른 시 “장날”의 앞부분이다. 추석 때면 “대추 밤을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는 싯구가 재인되는 경험은 그 시절 같은 교과서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중추가절로 불리는 추석은 영어로 가득찬 달(Full Moon)이라 번역될 정도로 달과 가깝다. 달맞이를 비롯해 반달 닮은 송편 등 유난히 달과 관련된 이야기와 상징들이 많은 추석, 달님은 뒷동산이 아닌 우리 광고에도 둥실 떠 있었다.
추석 대목을 노리는 광고에 이 3가지면 충분하다. 달이 둥실, 전통의 한복, 그리고 추석 때만 만날 수 있는 선물세트. 아무래도 추석광고의 전형적 타입은 여자모델이 제품을 들고 추석 분위기를 최대한 연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뚜기의 “올 추석 선물은 풍성하고 다양한 오뚜기 선물세트가 좋습니다.”, 베지밀의 “가족사랑 한가위에는 건강사랑 한아름”의 경우가 그러하다. 농협의 “얼마나 좋을까? 농협이 엄선한 추석선물이라면...” 광고는 담장 넘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처럼 기다려지는 추석의 정서를 담아내었다. 한국도자기는 냄비 위에서 큰 절을 올리는 예의까지 갖췄다. 모두가 둥근 달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넉넉한 추석풍경처럼 해가 가도 변하지 않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다.
단순히 추석 분위기를 표현하는 광고도 의미가 있겠지만 달을 새롭게 해석하고, 추석이란 시기에 맞춘 광고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가령 부동산 광고인 소풍의 경우는 분양이 완료되었음에 감사하는 광고를 “소풍만 하여라”라고 하며 자사 쇼핑몰 위로 둥실 떠오른 달님을 빅클로즈업 하였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더도 덜도 말고 추석만 하여라”를 고쳐 카피에 활용하였다. 롯데월드의 광고에는 이태백이 아닌 베토벤이 놀던 달이 등장한다. 물론, 옥토버 페스티벌을 광고하기 위해 축제의 오리지널인 독인과 독일인 베토벤이 모델로 등장하고 카피도 “달아달아 밝은 달아 베토벤이 놀던 달아”라고 하여 달타령을 하고 있다. 빨개진 베토벤의 코가 맥주 축제임을,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2006년 우리는 광고 속에서는 세계화된 추석을 만날 수 있다.
건강미인 윤은혜가 등장한 프로스펙스 추석 세일광고는 건강한 추석 선물을 “강추”하고 있다. 헤드라인의 맛을 살려 “건강한 추석 선물”로 올렸다. SK텔레콤의 기업PR은 이런 우리네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다. 비록 작은 지면이지만 충분히 속 마음까지 잘 표현하고 있다. “명절 때만 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란 헤드라인 아래, “바쁘면 무리해서 오지 말거라, 당신이 피곤하면 친정엔 다음에 가요(후략)”하는 부모님의 아내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크리에이티브이다.
먼저 르노삼성의 SM5 김혜수편은 차를 선택하는 소비자행동 과정의 재미있는 심리에 접근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여자가 쳐다 보는 건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주목받는 운전자, 슬로건처럼 “남다른 매력”을 가진 남자들이 타는 차라는 점을 잘 그리고 있다. 반면 기아차 오피러스는 앞서가는 리더의 차임을 포지셔닝하고 있다. 넉넉한 여백에 당당히 차를 레이아웃하며 세로로 써내려 간 한 줄 헤드라인으로 승부하였다. “오피러스, 다른 차와 거리를 두다” 대형차라면 주행성능 보다,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굳이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존경심”의 욕구에 소구했음을 알 수 있다. GM대우의 원스톰은 SUV답게 파도치는 해안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스스로 SUV임을 부정하는 슬로건 “SUV를 넘어라”, 결국 최고의 SUV가 되겠다는 부정은 강한 긍정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같은 차, 다른 시선으로 차를 보는 자동차 광고들, 소비자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결국 소비자의 눈을 끌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광고는 노출이후 주의집중, 그리고 이해와 수용, 보유의 과정을 거쳐 장기기억으로 가야한다. 카네스텐원은 컨셉트를 여(女) 한자로 간단하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한자의 일부분에 빨간색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타이레놀의 경우는 월드컵의 잔상이 남아있는 소비자의 뇌리를 다시 한 번 울려주었다. 빨간색만 봐도 태극기만 봐도 가슴 뛰는 붉은 악마에게, 2002년 보다 성숙한 메시지로 “머리 아플 땐 타이레놀”을 소구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경우, 새로운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런칭시켰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새로운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소개하고 있는데 브랜드의 힘이 점차 커져가는 요즘, 래미안, e편한세상, 푸르지오, 블루밍 등에 이은 또 하나의 브랜드로 경쟁에 뒤 늦게 뛰어든 현대건설의 분전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SK의 자원봉사 프로그램 “나 같은 잠꾸러기가 무슨 봉사냐구요?”편은 아침잠과 도시락 베푸는 행복을 바꿔버린 진솔한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기업이 사회적 이슈(Social Issue)을 지속적으로 약속하고 지원하여 고객과의 관계관리를 지속하는 프로그램은 이제 펼쳐지는 캠페인의 힘에 주목해 볼 일이다.
글의 앞에 인용한 노천명 시인의 장날은 이렇게 마치고 있다. 이쁜이보다 먼저 달려 나오는 삽살개처럼 여름휴가에도, 추석과 설날에도,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도 마중 나오는 부지런한 광고가 있다. 소비자가 고개 넘어 가까워지면 제일 먼저 마중 나오는 광고가 있다.
이희복│상지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