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축구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축구를 하는 나이에서 축구를 보는 나이로 접어든 모양이다. 금요일 늦은 퇴근 후 모두 잠든 새벽. 금요일이 주는 여유로움에 취해 거실에 앉아 소리 죽여 축구를 보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박병국 | The SOUTH 제작그룹 대리 bk21.park@cheil.com
해외의 유명한 축구리그 중에서도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를 특히 좋아하는데, 보는 이조차 숨차게 만드는 그들의 불꽃같은 역습과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빗줄기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 다국적 선수들의 젊은 열정을 좋아한다. 박지성의 맨유를 좋아하고. 평균연령 23.4세의 아스널도 좋아하며 강철같은 투지의 첼시도 좋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고는 리버풀이라 할 수 있다. 제라드의 땀에 젖은 붉은 유니폼 말고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수만 명이 하나되어 부르는 그들의 응원곡‘You will never walk alone’이다. 축구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은 알 법한 리버풀의 공식응원가인 이 곡은 리버풀 출신의‘게리 앤 페이스페이커스’가 불렀다.
축구 전문가도 아니고 영국에 산 적은 없지만, 리버풀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경쾌함과는 거리가 먼 장송곡같은 이 노래가 귀에 자주 걸리게 마련이다. 비틀즈를 비롯한 몇몇 아티스트에 의해 다시 불리는 곡이지만, 그래도 그 중 으뜸인 것은 역시 현장의 환호성과 섞여 울려 퍼지는 서포터즈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은 음조의 같은 곡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성격의 곡이 된다.
죽음의 아레나로 들어서는 검투사처럼 투지로 가득한 선수들에게는 진군가가 되고 승리했을 때는 지상 최고의 찬가가 되지만, 패한 후 어깨를 늘어뜨린 채 퇴장하는 선수들의 등 뒤로 보내는 노래는 변치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희망곡으로 들린다.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들에게 리버풀의 서포터는 승패를 떠나 끊임없이“어이 이봐~ 넌 결코 혼자 걷는 게 아냐!”라고 외쳐댄다. 이 수준이면 리버풀 축구팀은 11명이 뛰는게 아니라 수천 수만의 선수로 구성된 거대한 팀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손발이 오그라 들고, 비난이 쓰나미처럼 밀려올지라도 말해야겠다. 며칠 전 경쟁 PT 당일, 출발 전 꼼꼼하게 챙긴 보드가방의 손잡이를 계주선수의 바통터치처럼 전하던 순간,‘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그래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온몸을 트리플 악셀처럼 휘감고 나갔음을 말이다.
찰나의 영생 체험처럼 스쳐간 입사 이래 최초의 경험은‘나를 혼자 걷게 내버려 두지 않은’수많은 팀원들을 생각나게 했다(자, 이쯤에서 저에 대한 욕을 멈춰주세요). 스르르 열리는 자동문을 지나 신입사원으로 첫 발을 들인 그 때, 그 곳에서 처음 보았던‘팀원’들은 지 금 어디에 있는가?
팀을 배치받아 잔뜩 얼어있는 내게 “야, 웃겨봐!”로 첫인사를 건넨 그 사람은 오늘도 사보표지를 예쁘게 만들고 있으며, 온갖 종이로 지저분한 책상 위에서 머리를 싸매던 대리님은 지금 CD가 되어 자기 방을 어지럽히고 있다.
본인이 하면 한 시간만에 끝날 일을 굳이 내게 시키며 네 시간을 꾹 참고 기다려 준 선배는 여전히 예쁘며, 회사를 떠나며 내게 던진 마지막 농담이 예전처럼 마냥 웃기지만은 않았던 팀장님은 아직 찾아 뵙지 못하고 있다. 회식할 때만 한 팀이 되는 건 아니다. 옆 팀과 우리팀을 구분 짓는 용도만으로 팀이란 어휘를 한정하기엔 우린 기념할 것이 너무 많다.
P.S 400번째 사보란다. 매달 마감에 쫓기는 여느 사보와 다를 바 없지만 400이라는 의미심장한 숫자는 부족한 내게도 무엇인가를 기념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 키보드와 마우스에 대한 무지막지한 고문을 잠시 멈추고 파티션 너머 뭔가에 몰두해 있는 우리 팀원에게 무언의 박수를 보냄이 어떠할지…? 아하! 매일 그렇게 하신다고? 우왕ㅋ굳ㅋ~ 당신은 팀의 우등생,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박수 쳐 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