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학생이 내게 취업에 대해 조언을 구해온 적이 있다. 사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취업은 전쟁이다. 그런데 전장(戰場)에서 힘들게 승리를 쟁취했음에도, 어쩐 일인지 전 세대에 비해 전의(戰意)는 훨씬 낮아졌다. 기대치가 높아져서일까? 그런 요인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를 ‘좋아하는 것과의 불일치’에서 찾고 싶다.
나는 조언을 구했던 학생에게 관점의 전환에 대해 얘기했다. 큰 기업이 아니라 일하고 싶은 직장을 찾으라고 얘기해 줬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일에 빠졌을 때 직장생활의 의미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좋아할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하라고 권한 것이다.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를 질문하는 대신 ‘여기가 맞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비록 몸은 ‘이곳’에 있더라도 마음은 ‘저곳’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다. 여태껏 숱한 신입사원들을 맞이했지만, 일에 대한 확신과 미래가 불명확한 사람들은 어렵게 들어온 직장을 쉽게 떠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인문학이 화두처럼 회자되는데, 인문학이란 인문학적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력’일 때라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인문학적 통찰을 내면화한 사람은 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균형적이고, 일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포기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사실 나 역시 제일기획에 처음 입사했을 때 부서 배치에 다소 실망스러웠다. 1987년 공채 12기로 입사한 나는 회사에서 PR 기획 업무를 맡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배치된 곳은 엉뚱하게도 방송사 외주 드라마와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파트였다. 원하지 않던 일이었지만 그곳에서 방송과 영상 메커니즘을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싫어했던 그 일이 훗날 영상과 인터넷 시대의 PR 기획 과정에 필수요소가 됐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야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 ‘나의 플랜(my plan)‘ 속에 녹이면 하기 싫은 일도 ‘내공’이 된다.
원치 않던 부서에서 드라마 3편을 찍고 나니, 드디어 제일기획에도 PR 기획 파트가 생겼다. 물론 나는 자리를 옮겼고, 그 해에만 혼자서 기획서를 한 50개쯤 쓴 것 같다. 당시는 국내에 PR 개념이 생소할 때라 실제로 성사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 재미있게 일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내가 기획했던 일 중 ‘동서커피문학상’은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니,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일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의욕이 있으면 일에 빠져들고, 빠져들게 되니 욕심이 나고, 욕심을 내니 그게 내 일이 됐다. 나중에 플랫폼(Platform)이 만들어지면 그때 해보겠다며 손을 든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후배들에게 일을 시켜 보면 수용성(受容性)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항상 부정적 태도를 가진 유형이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일에 대한 수용성이 큰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자꾸 가게 된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성장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일들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올림픽에 9번이나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1996년 1억 원짜리 작은 규모의 첫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밖에서는 나를 PR 전문가라고 부른다. 언론 등에서 마스터, PR의 신, 통합마케팅 전문가, 국제행사의 달인 등으로 불리고 있다. 모두 과분하고 겸연쩍은 호칭인데, 개인적으로는 마스터란 호칭이 좋다. PR 회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PR 전문가로 지칭됨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해온 일을 기능적으로 따지면 전통적인 PR 업무는 고작 10%에 불과하다. 입사 초기엔 PR 업무 위주로 일했지만 그 후 스포츠 마케팅이나 프로모션, 이벤트 같은 일을 더 많이 했다.
그러나 PR적 시각으로 타깃과의 소통을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이나 이벤트를 PR적으로 접근했다. 나는 PR을 ‘업무 영역’으로 규정짓는 게 아니라 일을 대하는 ‘시각’으로 확장해서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아주 오래됐는데, 평사원이었을 때도 내가 쓴 PR 기획서에는 이벤트, 영상, 심지어 광고를 활용한 전략까지 담겨 있었다. 나는 항상 PR 고유 영역뿐 아니라 외연을 확장시키려 노력해왔다. 요즘 말하는 ‘통합 마케팅’, ‘통합 솔루션’의 출발이라고나 할까?
광고 일을 하는 사람은 전통적인 광고 언어로 문제를 파악하려 하고, PR 이슈를 PR적 접근으로 해결하려 하며, 이벤트를 이벤트만으로 답을 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요즘 같은 다채널 시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요즘 업(業)의 경계가 무너져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규정짓고 있는 울타리를 넘어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려던 일만 계속 고집할 게 아니라, 그 범주를 넘어 확장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한 PR을 넘어, PR적 시각으로 일한다는 게 중요하다. 통합 마케팅을 얘기하는 요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유연한 전문가적 시각이 아닐까? 나도 뭔가 다시 유연해질 때가 됐다.
[밑줄 긋기] PR적 시각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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