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지금 정보 포화 상태. 수많은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가치와 기준을 확립하는 방법에 대해 큐레이터적 시각으로 고찰해 본다.
나는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강의를 즐기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글 쓰는 일이 마음 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 따라서 정작 내 일은 미술평론가라 할 수 있으며, 항시 평론가로서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늘 전시장을 정기적으로 다니고,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가 하면 미술 관련 서적을 부지런히 탐독하고 있다. 매주 전시 소개 코너를 유심히 살펴 가봐야 할 곳을 메모하는가 하면 미술계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된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나는 전시장과 작가들의 작업실을 다니면서 작품을 보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됐다. 동시에 미술평론가로서 활동하게 됐다. 그렇게 얼떨결에 그 일을 감당하면서 나는 미술평론가와 전시기획자의 삶을 살게 됐고, 미술관 큐레이터를 그만둔 이후에도 여전히 그때 했던 일을 동일하게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
국내에서 한 해에 열리는 전시는 대략 5000여 건이 될 것이다. 상당 부분은 서울에서 열린다. 중요한 전시만 헤아려도 만만치 않은 양이다. 물론 그 모든 전시를 다 볼 수는 없다.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전시만 본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전시는 일주일 단위로 다니고 있다. 명색이 평론가라는 사람이 전시를 안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전시를 봐야만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알 수 있고, 작가와 작품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전시는 신문이나 미술 전문 잡지, <서울아트가이드> 등을 통해 선별하는데 오랜 시간 봐왔기에 좋은 전시를 하는 장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한편 수많은 작가들이 작업 활동을 하기에 그들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나는 전시를 많이 보면서 작가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소개를 받기도 하며, 집으로 발송돼 오는 작품 도록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평균 5~6개 이상의 도록이 발송돼 오니 결코 적지 않은 양이다. 나는 그 도록들을 찬찬히 살펴본 후 선별하고 테마별로, 방법론 별로 분류해서 따로 보관한다.
그 다음으로는 잡지, 신문에 실린 미술 기사(리뷰, 작가론, 논문) 등을 스크랩해서 정리한다. 테마별로 묶은 후에는 제본을 해둔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서점을 다니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 나온 미술 관련 서적 내지는 인문, 역사, 문학 서적 순서로 책을 사 모으고 있다. 미술평론은 무척 잡다한 지식을 요하기에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은 읽고 싶은 책 순서대로 사둔다.
매년 신인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전시가 열린다. 그중 어떤 작품, 어떤 작가를 선별해 평론을 쓰고 독자에게 알려줄 것인가는 미술평론가의 몫이다. 이를 위해 나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지는 않다. 다만 발품을 팔고 부지런을 떨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평론가는 동시대의 뛰어난 작가를 찾는 사람이다. 당연히 작품을 보는 안목이 가장 중요하다. 전시 관람과 책 읽기, 그리고 작가의 작업실 방문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돌아가야 가능한 일이 평론이다. 그래서 힘이 닿는대로 매주 정기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해내고 있다. 그것이 큐레이션의 기본일 것이다. 욕심이 있다면 이 많은 자료를 한눈에 보고 넉넉히 분류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박영택은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2010 아시아프 총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60여 개의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저서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 <애도하는 미술>, <수집미학> 등이 있다. 세상은 지금 정보 포화 상태. 수많은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가치와 기준을 확립하는 방법에 대해 큐레이터적 시각으로 고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