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인생이다
마케팅 화두인 UX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서 비롯된다. 이번 특집은 철학적 견지에서
바라본 인간의 ‘경험’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살면서 중요한 것이 많지만, 그 중 제일은 자존감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으면 계속 돈만 모으려 하고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려만 들지,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권력이나 미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높아지고 아무리 예뻐져도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폭탄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불안하고 정신이 없다. 자기를 존중한다는
건 자신을 믿고, 자기 경험을 아끼며, 자신의 경험으로 이룬 세계를존중하고
존중받을 줄 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경험의 그릇이다.
철학에서 경험이 주제가 된 것은 영국에서였다. 근대철학에서 대륙의
합리주의와 맞서는 것으로 영국의 경험주의가 있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에서 시작한 경험주의의 모토는 이것이었다. “관찰하고
경험하라. 그리고 경험한 것만을 믿어라!” 인연을 믿고 신비를 믿는
문과적 기질의 사람에겐 편벽된 주장 같기도 하지만, 이과적 기질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지당한 말씀이겠다. 그런데 왜 베이컨이 핏대를
올리며 관찰의 힘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을까? 바로 인간이
쌓아올린 편견의 벽이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컨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4가지 우상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시장, 극장, 종족, 동굴의 우상이다.
시장에선 ‘말’로 거래를 하지 않는가. 통용되는 말이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이 시장의 우상이다. 시장의 우상은
‘신’이나 ‘신성’, 혹은 ‘마녀’처럼 관찰되지 않은 것을 있다고 믿어버리며,
존재하지 않는 죄를 확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극장의 우상은 무대에 올라가 박수를 받은 것만 믿는 것이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라고 물었을 때 저명인사가 그랬다면 홀딱
믿어버리면서 내가 그랬다고 하면 무시해 버리는 것, 그것이 극장의
우상이다. 그 외에도 세계를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결국엔
곡해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우상이 있고, 우물 밖의 세상은 보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는 동굴의 우상이 있다.
사실 나는 베이컨이 타파하고 부수어야 한다고 말한 우상이 모두
우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신성이
있다고 믿으며, 인연의 힘도 믿는다. 나는 인간이 등에 자신의 이야기를
지고 나온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베이컨에 수긍하는 이유가 있다.
상식과 편견의 벽에 갇혀 새로운 경험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우상은 우리 안에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좋겠다. 인간은 경험의 그릇이라는 사실을. 삶은
소유의 게임이 아니라 경험의 게임이다. 선구자란 자기 경험을 믿는
사람이다.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느끼며, 그 감(感)을 믿고 그
감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오롯하게 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선구자 아닌가. 그런
사람이 일을 낸다. 때로는 좌절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경험을 존중할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아도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으면 계속 돈만 모으려 하고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려만 들지,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권력이나 미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높아지고 아무리 예뻐져도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폭탄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불안하고 정신이 없다. 자기를 존중한다는
건 자신을 믿고, 자기 경험을 아끼며, 자신의 경험으로 이룬 세계를존중하고
존중받을 줄 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경험의 그릇이다.
철학에서 경험이 주제가 된 것은 영국에서였다. 근대철학에서 대륙의
합리주의와 맞서는 것으로 영국의 경험주의가 있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에서 시작한 경험주의의 모토는 이것이었다. “관찰하고
경험하라. 그리고 경험한 것만을 믿어라!” 인연을 믿고 신비를 믿는
문과적 기질의 사람에겐 편벽된 주장 같기도 하지만, 이과적 기질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지당한 말씀이겠다. 그런데 왜 베이컨이 핏대를
올리며 관찰의 힘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을까? 바로 인간이
쌓아올린 편견의 벽이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컨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4가지 우상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시장, 극장, 종족, 동굴의 우상이다.
시장에선 ‘말’로 거래를 하지 않는가. 통용되는 말이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이 시장의 우상이다. 시장의 우상은
‘신’이나 ‘신성’, 혹은 ‘마녀’처럼 관찰되지 않은 것을 있다고 믿어버리며,
존재하지 않는 죄를 확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극장의 우상은 무대에 올라가 박수를 받은 것만 믿는 것이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라고 물었을 때 저명인사가 그랬다면 홀딱
믿어버리면서 내가 그랬다고 하면 무시해 버리는 것, 그것이 극장의
우상이다. 그 외에도 세계를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결국엔
곡해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우상이 있고, 우물 밖의 세상은 보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는 동굴의 우상이 있다.
사실 나는 베이컨이 타파하고 부수어야 한다고 말한 우상이 모두
우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신성이
있다고 믿으며, 인연의 힘도 믿는다. 나는 인간이 등에 자신의 이야기를
지고 나온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베이컨에 수긍하는 이유가 있다.
상식과 편견의 벽에 갇혀 새로운 경험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우상은 우리 안에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좋겠다. 인간은 경험의 그릇이라는 사실을. 삶은
소유의 게임이 아니라 경험의 게임이다. 선구자란 자기 경험을 믿는
사람이다.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느끼며, 그 감(感)을 믿고 그
감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오롯하게 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선구자 아닌가. 그런
사람이 일을 낸다. 때로는 좌절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경험을 존중할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