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rend] Culture 당신과 나의 이야기,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는 엄청난 감동이나 놀라움을 주는 영화는 아니다. 단지 잔잔한 일상 속 남녀 주인공의 대화만 가득할 뿐. 멋진 풍경과 로맨틱한 음악이 등장하더라도 초점은 항상 풋풋한 20대 남녀의 대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풍경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제시와 셀린의 목소리로 스토리가 채워진다. 화려한 의상이나 장면 하나 없이 시종일관 담담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주인공 제시와 셀린의 대화는 기차에서 시작해 전차의 맨 뒷좌석, 거리, 노천카페, 그리고 다시 기차역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사랑에 빠진 경험, 성적인 끌림, 죽음과 환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둘은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점점 깊숙이 서로를 느끼고 빠져든다. 깨닫지 못한 순간에도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마법. 영화의 막바지, 승차 안내 방송이 들리자 두 사람의 목소리와 눈빛이 마구 흔들린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짧은 대화. 작별 키스를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제시와 셀린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공유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이런 감정이 가능했을까. 애절한 작별을 한 후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채 30대가 되어버린 제시와 셀린은 파리의 한 서점에서 재회한다. 낭만과 현실을 교차하는 남녀의 이야기가 <비포 선셋>(2004)에서 이어진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재회한 후 제시가 떠나기 전까지 짧은 만남의 순간을 생중계하듯 쫓는다. <비포 선라이즈>가 여름날의 강렬한 대화록이라면, <비포 선셋>은 가을의 낙엽 향기를 지닌 은밀한 일기장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저렇게 다른 이와 깊은 감정으로 소통하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 속 남녀 간의 로맨스에 앞서 ‘진정한 대화가 가능한 관계’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짧은 통화. 소통이 참 쉬운 요즘, 어쩌면 우리는 이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포 선라이즈>를 접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관계 맺은 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소곤거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진득한 대화가 갖는 놀라운 힘을 결코 믿어 의심치 않는다.
Word by 지민지(어카운트솔루션8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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